김병희(시사평론가)

대학교 시절, 영국의 BBC뉴스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할 적에는, 그들이 다루는 뉴스의 폭이 부러웠다. 그들은 유럽, 북미, 남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세계 곳곳의 소식들을 실시간으로 전했고, 지구 어느 곳이든 그들의 특파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한국의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국내의 다양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산적하여, 해외의 뉴스들을 다룰 여유가 없어 보였다. 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의 어느 정치인의 입 또는 작은 매스컴에서라도 한국이 언급되면, 그것이 칭찬이었는지 조롱이었는지 분석하는 데에 분주했다.

세월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국제 정세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뉴스에서 한국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예전처럼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하다. 한국의 뉴스는 이제 세계 모든 나라들을 다루고 있다. 국내의 현안이 국제 정세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정밀하게 분석하는 작은 언론사와 유투버의 수도 헤아릴 수 없다.

스마트폰이란 하드웨어와 SNS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집단지성은 권력이 무언가를 감출 수 없도록 하고, 그들을 부패하거나 나태하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나의 대학교 시절에 대통령을 하시던 분은 돌아가시고, 내가 군대에 있던 동안 대통령을 하시던 분은 자살하셨다. 그 이후 대통령을 지내신 두 분은 감옥에 가셨다. 올봄까지 대통령을 하시던 분은 자택에서조차 시위대에 둘러쌓여 있고, 현재의 대통령은 지지율이 겨우 20%대라고 한다.

시민들의 비판의식이 지나간 역사를 잊혀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현실의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 시민들의 비판의식은 책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가감 없이 표현되었다. 그들의 진실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킬 때에, 큰 힘을 발휘한다.

권력을 비판할 수 없는 사회에서, 독재자의 초상화를 그리며,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던 예술가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찬양받을 가치가 없는 것을 찬양하기 위해 쓰여진 그들의 재능이 측은할 뿐이다.

이른바 한류로 크게 성공한 BTS, 오징어게임에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메세지가 있다.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너의 소중함을 스스로 알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라. 이 메세지는 세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강한 힘으로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네가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라라고 하는 메세지는 종국적으로 많은 이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강자가 적고, 약자가 많기 때문이다.

세계 2위의 군사 강국이라고 알려졌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세상에는 기어코 찾아가 죽이거나 굴복시켜야 할 이방인이 많지 않다. 이에 반해,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가족들을, 목숨걸고 지키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우크라이나는 목숨을 걸고 지키지만, 러시아는 목숨을 걸고 이방인을 침공할 이유가 없다.

6.25가 비극적인 것은 기어코 찾아가 죽이거나 굴복시켰던 상대방이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런 기억은 6.25뿐만 아니라, 제주에도 있었고, 광주에도 있었다. 이런 기억을 잊지 않는 것,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나 자신과 상대방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문화의 힘이 나온다.

김병희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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