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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담골(覃谷)의 추억....
문홍연 | 승인 2022.08.26 12:55

#일상 
담골(覃谷)의 추억....


         칡 꽃
                 詩 / 곽재구

​지리산 아래 토지면에서는
지금쯤 칡꽃이 미치게 피어나고 있지
배꼽에 땟물 습한 산그늘 내린 채로
우리들은 칡 한 뿌리를 물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로 달렸지
생각나거든
보리밥알 같은 초가집들이 황토 위에 묻어 있고
호박마름 꼬챙이가 흙벽 위에 붙어 있고
동구에 들어서면 보리떡 들쑥 냄새가
고픈 배를 적셔놓았지
참숯 같은 얼굴로 동네를 떠난 누님들은 알까
써레질 헛간 깊숙이 팽개친 형님들은 알까
칡물이 검게 오른 입술로
단물 빠진 수숫대를 꼭꼭 씹으며
우리들이 울컥 삼키던 어지러움
칡꽃이 하늘 끝까지 피었는데
달리고 달려 꿈속까지 환하게 피었는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가 형님들을 기다리며
버스가 들어오는 장터까지
우리들은 달리기 시작했지
횟배 앓은 가슴께로 칡꽃들은 날아들고
헛구역질 가쁜 숨으로 수수밭에 쓰러지곤 했지
미칠 듯 기다리는 우리들마저
칡꽃 눈물나는 산그늘을 배반하고
지금은 십장녀석이 주장하는
작업량을 어림으로 계산하며
공사장 십이층 난간에서
쓴 담배를 피운다
입술에 칡물이 배어들도록
꺼멓게 꺼멓게 속을 태운다.

- 곽재구, 『沙平驛에서』 1983)
***  ***  ***  ***  ***  ***  ***  ***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60년대 후반 국민학교에는 오전반, 오후반 이란게 있었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베이비부머 세대(56~62년생)들의 학생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지례면의 현재 인구가 1,500명 정도인데, 60년대에는 6,000명 넘게 살았다고 하더군요. 국민학교 역시 비좁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 반에 60여명 넘게 들어가도 교실이 모자라니 당연히 오후반까지 있었지요.

제가 사는 곳이 워낙 골짜기라 면소재지의 초등학교까지는 4km나 떨어져 있고, 또 큰 시냇물까지 건너야 했습니다. 저학년들은 학교에 가려면 무조건 5~6학년 형들에게 잘 보여야 뒤를 따라서 쉽게 등·하교를 할 수가 있었지요.

그날도 저학년들은 5~6학년 형들을 따라서 쫄래쫄래 학교로 향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칡넝쿨을 삶아 껍질을 벗겨서 파는 허름한 창고가 하나 있었지요. 당시만해도 칡넝쿨은 농가의 큰 소득원이었습니다. 껍질을 벗겨서 무슨 갈포(葛布)인가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창고 앞을 지나가는데, 골목대장격인 
먼 집안형이 "오늘은 학교를 땡땡이 친다 알것나?" 소설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처럼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한 목소리였습니다. 
저학년들이야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니 무조건 따라야지요. 
그렇게 해서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재도 잡고, 술래잡기도 하고, 산비알에 드러난 칡을 캐 먹기도 하고, 옹달샘에서 목욕도 하고, 이것도 시들해질때쯤에는 책보자기속의 도시락을 까먹었지요. 그리고는 낮잠을 즐겼습니다. 뭐...

낮잠에서 일어나 하교시간에 맞춰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틀간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3일째인가? 겁이 많은 1학년생이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 놓았지요.

그 후의 사태야 뻔하지요. 
싸리빗자루로 안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50년도 훨씬 넘었으니 기억도 희미하지만
제가 초등 6년, 중·고등 6년 12년중에서 유일하게 결석으로 처리된 하루였습니다.

그날 그 골짜기에 칡꽃이 참 많았었다는 기억만 남았습니다. 10여명의 후배들을 결석으로 이끈 먼 집안형님은 부산 어디에 사시는데 68살인가 되셨을 겁니다.

그 골짜기는 어찌나 깊은지 이름도 담(覃)골입니다. 지금도 그날 땡땡이에 함께 했던 친구를 가끔 만나곤 하는데 "담(覃)학교를 한번 더 할까?" 하며 씨익 웃고는 합니다.

그러고 보니 칡넝쿨은 지금도 그대로인데, 그때 그 소년(少年)은 청년, 장년을 거쳐서 이제는 노년(老年)이 되었습니다.


방금 검색을 해보니 칡 줄기를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내서 만든 하얀 섬유로 짠 옷감을 갈포(葛布)라고 한다네요. 요즘은
예술가들의 장식예술에 쓰인답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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