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청와대로 되돌아갈 것을 강력히 권고함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필자는 SNS를 통해 두 번(올해 3월 18일과 4월2일)이나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데 대해 반대하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서 집무실을 옮기는 명분이 국민의 뜻을 겸손하게 받들겠다는 국정철학과 맞지 않으며,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한 명분은 청와대가 오히려 국민과 소통하기에 더 적합한 구조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윤 정권이 국민의 뜻을 진정 받들겠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청와대로 돌아갈 것을 한 번 더 권한다. 비록 귀를 닫은 집권층에게는 소설 같은 공허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허공에 대고 하는 소리일지라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윤 정권이 들어선 지 벌써 3개월이다.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실로 사용하는 데 대해 이런 게 쿠테타적 발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윤모라는 의원이 권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일제강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주변에는 아직도 4대강국의 파고가 높은 데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의 하나다. 그러기에 용산록(龍山麓)에 우뚝 솟은 국방부 건물은 나라 안보의 상징처럼 보였고 안보에 대한 신뢰를 높여 준 국민의 자랑으로 인식되어 왔다.

청와대 전경

필자는 거처를 반포아파트에 두고 있을 때 ‘12.12쿠테타’를 맞았다. 그때에는 국방부 건물을 지나치거나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 근처를 지나치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안보의 상징처럼 느끼고 마음 든든함을 갖는다.

그런 국가안보의 요추(要樞) 역할을 하던 건물을 대통령실로 사용하겠다고 했을 때 그 당혹감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런 건물에 대검청사에서 거느린 직원들과 근본을 알 수 없는 극우 유튜버 관련 인사가 비선조직을 통해 메워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분노 또한 없지 않았다. 나만 그랬을까.

대통령실이 들어선 뒤 나는 지금도 대한민국 국방부가 어디로 옮겨졌는지 알지 못한다. 국방부를 세입자 내쫓듯이 그런 식으로 옮기도록 한 정부에 안보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국가안보의 상징처럼 보였던 그 건물이 국방까지를 포함한 국정 최고 지도부가 사용하겠다는데 왜 안보에 대한 자신감이 상대적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국방부 건물을 저런 식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국방부가 책임진 국가안보를 저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60만 대군의 요추가 있는 그 건물을 저런 식으로 대하면서 안보를 강조할 수 있을까. 군 경험이래야 학적보유자로서 군생활을 했고 예비군 훈련 몇 번 나간 것밖에 없는 내게 이제는 그런 정도의 국방의식마저 흐려지고 있다. 새 정권이 ‘무시한’ 그 국방부를 국민더러 신뢰하라고 강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용산에 있던 국가 방위의 상징 국방부 건물, 이것은 대통령실로 급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얼마나 장엄・정교하게 꾸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대통령이 취임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대통령이 관저에 언제 들어갈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아직도 사가(私家)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관저를 청와대에서 옮긴다고 했을 때 저렇게 긴 시간 동안 사가의 신세를 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일까. 그래도 되는가.

지난번 물난리가 났을 때 총리는 그 사가에 대통령의 위기관리에 필요한 시설이 갖춰진 것처럼 이해하도록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총리의 언급은 곧 무슨 근거로 사가에 그런 장치를 할 수 있느냐는 항의성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총리가 언급한 것이니 믿어야겠지, 그리고 24시간 국가안보의 총책을 맡은 대통령 주거지에 그런 시설이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이웃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는 그런 시설을 할 수 없는 우리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음에 육군참모총장의 빈 공관을 수리하여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려던 계획은 외교장관의 공관으로 바뀌어졌다. 빈 공관을 수리하여 옮긴다고 했을 때 마음 속으로 찬동했던 이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장관 공관으로 바뀌고 그 수리 기간이 오래 걸리게 되면서 불필요한 잡음까지 들린다. 처음부터 이를 예상했을까. 그 수리비가 얼마나 드는지 몰랐지만 며칠 전 변기만 2천만원이 든다고 하는 뜬 소리같은 뉴스가 전해졌는데, 수리 기간이 오래 걸리는 걸 보면 그것이 뜬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은 그게 다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리모델링을 거쳐 대통령 사저로 사용될 지금의 외교부장관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 근처를 가본 적이 있다. 대통령 관저가 이곳에 정착한다면 아침저녁 출퇴근 때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경호상 꽤 번거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관저 근처의 넓지 않은 골목길을 오르내릴 때, 과잉 경호의 필요라도 생기게 되면 이웃이나 통행인의 고통은 불문이가지다. 그뿐인가, 한남동에서 삼각지까지의 4차선 출퇴근길도 조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런 번거로움을 통해 대통령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남동에 대통령 관저가 들어서게 되면 또 그 주변의 경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의 전례에 비춰본다면 대통령 관저의 경호를 위해 그 주변의 주택들을 매입, 관저 경호에 지장이 없도록 하려고 할 것이다. 이웃들이 재산권 행사에 불편을 느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공관의 뒷산도 경비 강화를 위해 활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경복궁 근처의 궁정동 일대가 청와대 부속건물로 편입되었듯이 한남동 일대도 대통령 관저 중심으로 재편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남동 일대가 대통령 관저 타운으로 형성된다고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일까.

거기서 그칠까.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서는 한남동 우향편에 자리잡은 남산이 대통령 관저의 안위에 불안하다는 아첨꾼들의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그곳에 포대를 설치하지는 않겠지만 대통령 관저의 안위를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아첨꾼 상자꾼들의 소리가 나오게 되면 그런 곳에 ‘대통령의 안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또 무슨 장치들이 투입되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필자의 소설 같은 상상 속에는 한강이 내다보이는 한남동 일대와 목멱산 남산록(南山麓)에 ‘프레지덴셜 빌리지’가 형성되는 것이 상상 속에 보인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지금 수리하고 있는 공관은 외빈들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도록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넘겨주는 것이 좋겠다. 이 또한 과연 망상일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윤 정권은 국가의 안보와 국정의 원활한 수행, 도시 서민의 편의와 불필요한 갈등 제거를 위해서라도 청와대로 돌아가기를 강력하게 권유한다. 윤 대통령이라면 낼 수 있는 용기다. 아직 늦지 않았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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