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름 휴가-김천에서 보낸 1박2일

급작스럽게 잡힌 수련회 or 여름 휴가?

"이 목사, 수요일 날 덕천교회로 수련히 가려고 하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전화를 받고 겁이 덜컥 났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교회는 수련회를 받을 조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장 바깥 화장실뿐 아니라 수돗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당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삼팔선(?)은 여전히 도도히 화장실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엉겁결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 장로님 교회? 아니면 예수전도단?"

편 장로님은 나의 고등학교 선배로 지금 서울의 한 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다. 예수전도단의 일원으로 농어촌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오래 해 온 장로님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의 수든지 아무런 사전 상의도 없이 수련회를 오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언뜻 들었다.

여름 휴가 대신 덕천교회를 방문해서 사랑을 나눈 사람들. 오른쪽부터 편남영 장로·김혜성 장로·한춘자 집사·손영강 집사·이명재 목사

아니야, 나와 관계성의 농밀도(濃密度)로 볼 때 아무런 얘기 없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물론 김천에서 생활할 때였지만 불쑥 찾아온 적도 몇 번 있지 않나. 잠깐 사이에 여러 생각들이 뒤섞여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하하하, 그런게 아니구 우리끼리의 수련회를 덕천교회로 가기로 했어. 신경 쓰지 마. 수요예배 시간에 맞춰 갈게"

얘기의 요점은 이런 것이었다. 여름 휴가를 받아 좀 먼 곳으로 떠날까 하다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덕천교회 봉사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농촌 교회는 언제 방문해도 할 일이 있을 테니까....

농촌 교회에 가 보고싶은 사람들

편 장로님이 최종 결정은 했지만 이렇게 정한 데에는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먼저 김혜성 장로님을 들 수 있다. 김 장로님은 편 장로님 부인이다. 그러니까 한 교회에서 부부 장로로 지금 충성하고 있다.

편 장로님은 김천혁신도시 한 건축 건설현장에서 1년 동안 감리사로 일을 했다. 주일예배는 서울 본 교회에서 드리고 수요 밤 예배는 덕천교회에서 우리와 함께 드렸다. 거의 1년을 그렇게 했다. 그럴 때면 저녁 식사를 꼭 장로님이 샀다.

편 장로님이 덕천교회 얘기를 전할 때, 김 장로님은 시간을 내어서 꼭 가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기 때문에 주일을 빼고는 거의 쉴 날이 없다. 따라서 마음뿐이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손영강 집사님이다. 안산에 있는 비교적 큰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손 집사님은 섬김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다. 주위에 대목(大木)으로 알려진 그는 갖고 있는 목수로서의 달란트를 작은 교회 봉사로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에 편장로님과 이곳까지 달려와서 예배당 입구 문턱을 낮추고 책장을 만드는 등 단장을 하고 올라갔다. 덕천교회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며 여름 휴가를 덕천교회 재 방문으로 대체할 생각을 했다. 부인 한춘자 집사님이 동행해서 더욱 든든했다.

강의가 있는 날과 겹쳐서 정신이 혼몽해짐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처음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두 가정(편장로님, 손집사님)이 방문하기로 한 날짜가 공교롭게도 내가 많이 바쁜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기관 및 학교 등지에서 특강 요청이 오는데, 하필 그들이 방문하기로 한 수요일에 두 곳 강의가 잡혀 있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우리끼리 김천 가서 놀다가 저녁 예배에 맞추어 갈 테니까."

마음 놓으라는 말이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맞이하는 입장에선 그게 아니다.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조금이라도 부담을 더는 길이 무얼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강의를 액기스로 하고 조금 당겨서 끝내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수요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급히 전화를 넣었다.

김천 혁신도시에 있는 음식점 '시월'의 돌솥밥은 시장기를 쫓아내기에 충분했다.

"6시까지 '시월'로 오세요. 식사 주문을 해 놓을 테니까. 저녁은 제가 쏩니다. 호스트 역할을 부실하게 한 죄로... 그나저나 지금 어디에요?"

"오케이! 6시에 거기서 봐. 지금 직지문화공원과 사명대사공원 한 바퀴 돌고 찻집에서 차 한 잔들 하고 있어요. ‘시월’이면 전에 갔던 그 집이지?"

편 장로님은 미식가로 김천의 맛집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김천 생활 1년 남짓의 사람이 15년 이상 된 나보다 음식점을 더 환하게 꿰뚫고 있다. 그를 따라가면 어느 음식점이든 만족감을 안고 나온다. 우린 '시월'에서 돌솥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혁신도시에 있는 '시월'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

돌아오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려 햄버거를 몇 세트를 샀다. 농번기여서 저녁 식사도 못하고 달려올 성도들에게 전달할 대용 음식이다. 몇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문객들에게 농촌 교회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예배당의 외형도 또 예배의 내용도...

하지만 서울에서 온 분들은 전혀 그게 아닌 듯했다. 작은 교회의 적은 성도들이지만 이런 데서 우러나는 진정성 넘치는 분위기에서 은혜를 받는 것 같았다. 찬송도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1당 10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나 할까.

순서에 없던 간증의 시간,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오른쪽부터 김혜성 장로, 한춘자 집사, 손영강 집사).

김혜성 장로님이 덕천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신앙 연륜과 믿음의 정도가 느껴졌다. 약 5:11-14를 본문으로 '인내하는 자가 받을 축복'이란 제목으로 내가 말씀을 전했다. 예정에 없던 시간을 가지라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짧게 신앙 간증의 순서를 갖기로 했다. 본인들이 고사하면 성사되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모두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증에 임했다. 서울에서 오신 분들 중에서는 손영강 한춘자 집사님 부부, 김혜성 장로님이 차례대로 간증을 했다. 그리고 답사 형식으로 우리 교회 김 집사님이 눈물로 한 간증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쉽게 고백하지 못할 내용들인데 믿음의 형제자매들 앞이어서 스스럼이 없어 고마웠다.

수요 밤 예배에 간증으로 은혜를 나누다

3년여를 끌어온 코로나19가 아직도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재확산의 여파로 예배가 많이 위축당하고 있다. 친교(코이노니아)가 신앙생활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인데, 공동식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차(茶)조차도 함께 마시지 못하게 되니 성도들과의 관계가 점점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수요 밤 예배 후 방문객들이 간증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예배 후 햄버거와 음료수를 나누었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면 함께 간식을 들면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었을 텐데.... 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정신없이 돌아간 하루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다. 성도들은 집으로 그리고 서울 손님들은 근처 모텔로 안내를 받았다. 비교적 깨끗하다고 소문난 모텔이다. 믿음 좋은 권사님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가끔 이용한다.

다음 날, 즉 목요일 아침 9시, 김천 제2의 관광지로 출발했다. 부항댐이 목적지이다. 평소엔 지나가다 차창을 통해 보는 정도였는데, 서울서 온 손님들로 인해 비교적 세밀하게 관광지 부항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짚와이어와 출렁다리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일렁인다. 어떤 사람은 기대감으로 또 다른 사람은 두려움으로...

편남영 장로님과 아내 박성숙 목사가 짚와이어 티켓을 끊고 나머지 사람들은 33층 높이의 전망대까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데에도 요금이 적지 않게 나왔다. 편 장로님이 계산을 했다. 일년 중 7~8월은 성수기여서 김천시민에 대한 할인도 조금밖에 안 되었다.

김천 제2의 관광지 부항댐으로 몸과 마음을 달렸다.

부항댐에서 여름을 즐기다

편 장로님은 산악인이다. 따라서 고공공포증 같은 것은 프리 패스다. 두려움이 없다. 우린 장난기 섞인 말로 무사 귀환을 빈다면서 출발 전 기념사진을 찍었다.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가량,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점으로 보였다가 가까이 올 땐 사람으로 환원되는 모습이 신기했다. 우린 환호성을 질러댔다.

전망대 꼭대기는 건물로 치면 33층 높이라고 했다. 아래를 쳐다보니 어질어질했다. 투명 유리를 깔아놓은 전망대 바닥을 걸을 땐 오금이 저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티켓 값을 해야 한다며 억지로 유리 판을 밟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짚와이어는 간큰 사람만이 탈 수 있는 것인가. 일행 중 편남영 장로가 대표 선수로 부항댐을 가로질러 호사를 누리고 왔다.

또 출렁다리를 걸었다. 출렁이는 강도가 생각보다 낮았다. 우리 일행을 비롯해 소수의 사람들만이 걷고 있어서일까? 많은 사람이 걷는다면 무게에 의해서 더 크게 출렁이게 되는 건가. 중간중간 정자며 쉬어 갈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좋았다. 노약자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읽혀졌다.

출렁다리를 걷다가 정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조카 은미가 그의 아들 준환이와 함께 우리 쪽으로 왔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반가움의 정도가 더 컸다. 초등학교 1학년인 준환이가 학교 친구들과 이곳 풀장에서 노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좀 일찍 온 관계로 약속 시각 전에 출렁다리를 걷는다고 했다.

출렁다리 중간에 있는 정자에 앉아 풍월을 읊었다. 그 때 내게 손자뻘 되는 준환이와 조우 같이 사진을 찍었다.

관광지가 왜 이렇게 한가한 거지? 이렇게 혼자 생각하다가 역시 어리석은 자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삼복더위의 끝자락이라고 해도 폭염의 기세는 여전하다. 대낮에 이 무더위를 견디며 관광을 즐길 사람이 많지 않은 건 당연하지 않나. 우리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출렁다리를 한 바퀴 도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김 장로님이 짚와이어 티켓팅하면서 받은 상품권으로 하드(얼음과자)를 사서 돌렸다. 5천원짜리 상품권이었다. 평소 마음을 주지 않던 얼음과자인데, 폭염에 오롯이 노출된 가운데 먹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또 꿀맛이었다. 어른들도 가끔 동심(童心)이 발동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지례 흑돼지 요리로 점심 식사를 하고

그러고 보니 벌써 2시간 이상을 부항댐에서 보낸 셈이 되었다. 배에 꼬르륵 소리가 났다. 손 집사님이 점심은 자기가 살 테니 맛집으로 안내만 하시라고 했다. 음, 뭘 먹을까. 이곳에 왔으니 지례 흑돼지를 피해가기 어렵지! 모두들 좋다고 했다. 지례 흑돼지의 원조격인 삼거리식당으로 몰려갔다.

점심은 지례 흑돼지로 정하고 원조격인 삼거리식당으로 갔다. 코로나19시국이지만 식당은 만원이었다. 손영강 집사가 점심을 샀다.

점심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홀은 만원이었다. 코로나19가 슬슬 활동을 재개한 시기인데도 맛집엔 손님들이 들끓는 이유가 뭘까? 우리는 왕소금구이를 먼저 시키고 이어 양념불고기를 주문하기로 했다. 고기도, 상추를 비롯 야채도, 반찬도 심지어 냉수까지 넉넉했다. 분위기가 서울과 사뭇 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예배당에 가서 짐을 마저 싣고 상경하는 일만 남아있다. 올 때 산길로 왔지만 돌아가는 길은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뒷편 장로님의 차는 지남철처럼 내 차를 따라올 것이다. 구성면사무소를 다 와 갈 때였다.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편 장로님이었다.

“바람재라 했던가? 그 밑에 있는 전통찻집 들려 대추차 한 잔씩들 하고 가지. 몇 번 헛걸음 한 것 같은데...”

카페를 경영하는 터라 이색 카페 내지 찻집에 관심이 많을 법하다. 남면에 있는 양조장 카페에도 몇 번 들려 커피를 마시며 내부를 살펴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또 농소면 창고 카페에도 같이 간 적이 있고... 급히 좌회전을 해서 다시 산길로 차를 몰았다.

빼놓을 수 없는 전통 찻집 '자명(紫明)'

자명(紫明)은 의외로 조용했다. 이 시각이면 주차장에 자동차로 빡빡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은 것이 좀 어색했다. 이 찻집은 시니어 세대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담화 공간이다. 젊은이들은 갈 곳이 지천인데 나이든 장로년층은 마음 놓고 차 한 잔 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데 착안해 찻집을 구상했다.

황악산 바람재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전통찻집 '자명'에서 대추차를 비롯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시고 나왔다. 찻집 앞 포토존에 앉아 도란도란 사진을 찍었다(바쁜 와중에도 주인장이 사진을 찍어 줌)

주인장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크리스찬이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우리 목사님’이라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우리 여섯 식구가 착석하니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어떤 영업이든 처음이 어렵지 일단 사람이 좌정하고 나면 실타래 따라오듯 손님들이 연달아 들어온다. 그런 ‘처음’의 역할을 종종하면서 느끼는 기분은 상상 이상이다.

메인이 대추차이고 부대로 나오는 차가 우엉, 돼지감자, 메밀 등의 차다. 시시각각으로 차종(茶種)이 바뀐다. 차를 다 마시기까지 화장실에 두세 번 다녀오는 것은 기본이다. 서먹서먹한 분위를 단박에 풀어주는 곳, 이곳은 껄끄러운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신통력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1박 2일의 여름 휴가-영육간 힐링의 시간

1박 2일의 여름휴가, 사실 처음엔 봉사할 일을 생각했지만 휴가 즉 쉼에 방점을 두고 움직이자고 했다. 일 년 열두 달, 일부러 시간을 내기가 힘든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바쁘고, 평일엔 카페 운영과 공사 현장 일로 매이는 때가 많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가자고 했지만 할 일이 있다며 길을 재촉했다. 손 집사님이 동네 어귀 포도 작업장에서 샤인머스켓을 사서 편 장로님과 나에게 하나씩 안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달콤한 여름 휴가는 다음을 기약하고 막을 내렷다. 영육간 힐링이 되었다며 활짝 웃으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이명재 목사 記).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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