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첫 단추가 어긋난 윤석열 정권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실망이다. 정치 신인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정치 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구태 정치를 퇴치하고 정치 지형을 새롭게 다지는 데 있다. 이른바 정책 방향의 전선을 새 정치와 구정치로 설정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이런 점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구정치가 아닌 전 정권 공격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 정권 타도에 목숨을 건 격이다. 시대착오이고 미련한 짓이다. 적극 지지층은 환호할지 모르겠다.

정치는 일부의 적극 지지층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가 대상이다. 윤석열이 구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독자적 결정권이 전무하지 않나 싶다. 정치 신인이어서 할 게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할 게 많다.

정치란 집을 짓는 것에 비유된다. 새집을 지어야 할 사람이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리모델링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아이디어가 섞여 있다. 그동안의 정치 타성에 의존하는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격이다.

통합과 화합의 정치는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인재를 두루 기용하고 야당의 주장도 귀담아 들어주는 등 포용의 덕이 발휘되는 것이다. 내용에 더해 이런 모습이 외형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정치에 자신이 있다는 말일까. 아마 그 반대일 가능성이 많다. 윤석열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 과반수 지지에 실패했다. 게다가 상대 후보에 겨우 0.73% 차이로 신승했다. 겸손하라는 얘기다. 거기엔 국민을 두루 살펴보라는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어땠는가. 검찰 출신으로 요직을 채웠다. 검사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전 정권이 검찰공화국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검찰개혁을 시도했는데, 윤석열이 대선에 승리하자 보란 듯이 검사들의 천국을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는 국민의 책임이 크다. 뻔한 결과를 두고 진영 논리에 갇혀 대선에서 그를 선택한 것인데 누굴 탓하겠는가. 선거는 예행연습이 없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지난 대선은 후진국형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선거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윤석열 정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전 정권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문재인 정권의 전매 특허격인 '적폐'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폐는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는, 국민에 대한 적폐가 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문답(door stepping). 준비되지 않은 도어 스텝핑이 지지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사진=연합뉴스).

정권에서 비롯된 적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힘든 적폐 청산은 정치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적폐’라는 화두를 도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100일(The first 100 days)은 국민의 지지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이다. 언론도 호평을 쏟아내어 흔히 허니문 기간으로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윤 정권의 사정은 여러모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국민 지지율이 30% 초반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20%대로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적극 지지층에서 두고 볼 일이 아니라며 용을 쓰고 있지만 이들의 용만으로 여론을 되돌릴 수는 없다. 민심은 국민 전체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윤 정권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갈 길을 가겠다고 하지만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이런 발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런 천연덕스러운 말은 통치 능력의 결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윤석열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마추어의 장점으로 프로의 단점을 깨트려 가는 것이 그 길이었다. 새 정치의 리더로서 구정치를 몰아내었다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기했다.

검찰 출신과 구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질질 끌려다니는 듯한 윤석열의 모습은 ‘저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안쓰럽다. 하지만 자업자득임을 알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함량 미달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따르는 현상이다.

역사의 뒷걸음질은 국력의 낭비이다. 윤석열 정권이 잘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생각하면 온통 먹구름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어떤 식으로든 타개책이 있으면 좋겠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