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隨想)] 십자가에 달리신 장로님

‘십자가에 달리신 장로님’이라면 너무 거창하게 들리지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란 말이 믿는 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십자가와 장로님’ 이야기는 사연이 있습니다. 벌써 4일 전이네요. 2월 8일 화요일이었으니까요. 김천의 한 건축 현장에 내려와 1년여 감리사로 일하고 있는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농촌의 작은 교회인 저희 교회에 와서 삼일 밤 예배를 드립니다. 성도가 많지 않은 농촌 교회인지라 목사인 저로서 미안함이 없지 않지만 장로님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모든 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어서 걱정이라며 도리어 격려의 말을 해줍니다. 그래도 수요 밤 예배를 통해 마음껏 찬양하고 말씀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지난 달 말 수요 예배 끝나고 예배당 십자가를 주시하더니 원래 십자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설치한 지 15년이 지나 불이 나갔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리고 몇 주 지난 지난 화요일 오후 시간에 교회로 달려왔습니다. 현장 일이 좀 일찍 끝나고 시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배당 십자가 작업을 위해서 시간을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장로님의 손에는 뻰찌와 드라이버 등 몇 가지 연장과 굵은 전기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전기 선 접촉 불량으로 십자가 불이 안 들어오는 것 같다며 선을 굵은 것으로 교체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지붕을 타고 십자가 탑을 올랐습니다. 얼기설기 세워진 철탑엔 수리 전문가도 오르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장로님이 한다기에 막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러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이라도 하는 경우엔 큰 부상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한 시간 가까이 전선 잇기 등으로 작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한 듯, 전기 플러그를 꼽아보라고 했습니다.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불이 들어와야 할 텐데... 장로님보다도 제가 더 좌불안석입니다. 장로님의 정성과 사랑을 생각할 때 네온사인에 불이 꼭 들어와야 합니다.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플러그를 꽂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타이머 시간 조정이 잘못된 때문이 아닐까 싶어 이리저리 타이머를 돌려봐도 역시 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어둠의 그림자가 스쳐지나갔습니다. 장로님의 애쓴 보람이 사라진 듯해 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서로를 위로하며 우린 근처 음식점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수고한 장로님을 생각해서 제가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선구이 백반을 시켜 먹었습니다. 십자가 수리 일을 잊게 하려고 우스운 얘기를 섞어가며 대화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타이머를 빼고 십자가 선을 직접 꽂으면 불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봤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내 차로 장로님을 거처하는 오피스텔까지 태워다 드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장로님에 대한 감사함이 몰려왔습니다. 돈으로 돕기는 쉽습니다. 마음과 말로 돕는 것은 더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몸으로 행동으로 돕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장로님은 오랜 세월 봉사로 주위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예수전도단 소속으로 봉사하면서 매년 농어촌을 방문하여 의료봉사와 집수리, 이미용 봉사 등을 해 왔습니다. 모두 자비량 선교입니다. 봉사가 몸에 밴 삶을 살아왔습니다.

예배당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이지요? 십자가에 빨간 네온사인이 들어와서 어둠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보통 때의 십자가 불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마치 다시 살아난 생명체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재빨리 사진을 찍어 장로님에게 보냈습니다. 할렐루야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엔 환한 얼굴 모습까지 묻어 전달되어왔습니다. 헤어질 때의 그 얼굴과는 상반되는…. 무척 기뻤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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