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수상(隨想)] 우리 집 세배 이야기

벌써 세 해째다. 설 명절을 온전히 쇠지 못한 것이... 코로나19라는 복병은 우리의 일상을 흩트려 놓았다. 꼭 명절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위해서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6남매 중 막내요, 또 세 아이를 거느린 가장이다. 결혼하기 전 30 중반까지 혼자 살다시피했다. 그러니 단출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읜 탓으로 형님들과의 왕래도 그렇게 흔한 편이 아니었다. 몇 년 만에 한 번씩, 그것도 명절에 찾아가서 어울린 것이 전부였으니까.

늦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진 후 내 생각으로만 살아갈 수 없었다. 일이 있을 때 아내와 상의를 해야 했고, 세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엔 그들의 의견도 들어야만 했다.

번잡하고 마음을 많이 빼앗기는 일이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설과 추석 그러니까 민족의 대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날엔 아이들을 데리고 큰댁을 다녀왔다.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고도 이 방문은 계속 이어졌다. 주위 여러 가정에서는 일상적인 일이 되겠지만 우리 가정은 어렵게 쌓아 올려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어서 감회가 깊다.

그런 전통이 3년째 중지된 상태다. 물론 전대미문의 코로나19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술이 병원균을 제압해왔는데, 코로나19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제압하려고 하면 또 다른 변이종에 나타나 의술과 숨바꼭질을 한다.

감염은 사람을 통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만남이 절제되어야 했다. 사회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자체가 휘청거렸다. 인간의 교만 때문일까.

상가 문을 열어도 찾는 사람이 없고, 음식점 등은 아예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 다시 문을 열 요량으로...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이들은 작년에 이어 올 설 명절에도 김천 엄마 아빠 못 찾아뵐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의 의사이기도 하지만 직장에서도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고 한 모양이다.

정부도 국무총리가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거리는 멀리하고 마음은 가까이 할 것을 권했다. 꼭 가야 할 일이 아니라면 이번 설만큼은 가정을 지키면서 조용히 지내기를 바랐다.

오늘 저녁 무렵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의 벨 소리가 아니었다. 보다 시끄러운 것이 보이스톡으로 온 것 같았다. 아내는 아이들과 유쾌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세 아이가 만나서 홍제동에 사는 이종사촌 집에 놀러 갔다는 것이다.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갔는데, 회색빛 속에 파란색을 찾은 듯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가 폰을 내게로 가져오면서 아빠와 통화하라고 했다. 달덩이 같은 아이들이 폰 화면을 가득 장악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아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영상으로 하는 세배였다.

비록 설 이틀 전이지만 영상으로 통화하는 김에 세배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들이 세뱃돈은 어떻게 받느냐고 조잘댔다. 내가 한 술 더 떴다.

"대면으로 하는 세배는 받는 어른이 세뱃돈을 주지만 영상으로 하는 세배는 하는 사람이 역으로 세뱃돈을 드리는 거라는데? 통장 번호 문자로 보낼 테니 세뱃돈 보내라"

아이들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아우성이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준 것만 해도 고맙다. 이 어려운 시기에 각자 원하는 직장 다닐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크게 해 준 것 없는 엄마 아빠를 늘 생각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예쁘다.

짧지 않은 시간 통화하면서 아이들에게서 진한 정을 느낀 것도 과외의 기쁨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관계를 다른 방법으로 익어가게 만드는가 보다. 올 설을 이렇게 맞이한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