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선 TV토론을 주관하는 지상파 3사가 설 연휴인 31일 4자 토론을 열려고 했으나 국민의힘의 '나 홀로 반대'로 토론이 불투명해졌다. 지상파 3사는 당초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합의로 양자 토론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법원이 "양자 토론은 유권자의 알 권리와 나머지 대선 후보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두 후보만의 TV 토론을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그 뒤 지상파 3사는 4자 토론을 위한 조율에 들어갔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1, 2위 후보자들끼리 제3의 장소에서 양자 토론을 먼저 하자는 안을 불쑥 꺼내 들었다. 방송사 초청 토론이 아닌 두 후보의 합의에 따른 토론은 괜찮다는 논리다. 윤석열 후보는 27일 "다자토론을 해보니깐 상대방에 대한 검증과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더라"고 했다. 민주당은 31일 하루에 양자 토론도 하고 4자 토론도 하자고 역제안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윤 후보를 빼고 3자 토론을 하자고 맞서면서 '31일 4자 TV 토론'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대선 후보의 면면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방송 토론회가 성사되어 설 명절 연휴에 만날 수 있기를 많은 사람들은 바라고 있다(사진=SBS 뉴스)

대선 TV 토론은 대규모 선거 유세가 사라지다시피 한 요즈음 후보가 유권자들과 만나는 소중한 자리다. 코로나19로 대면 유세가 제한되다 보니 TV토론이 더 중요해졌다. 설 연휴를 앞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민심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생각과 능력, 도덕성을 확인한다. 후보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치 철학과 집권 구상을 알리고 한 표를 호소할 절호의 기회다.

어떤 후보에게는 '굳히기' 자리일 수 있고, 어떤 후보에게는 '뒤집기' 발판이 될 수 있다. 1960년 미국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와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 부통령이 맞붙은 것이 대선 TV 토론의 원조로 꼽힌다. 화려한 경력의 닉슨을 케네디 후보가 압도하면서 판세를 뒤집었다. 이후 미국의 대선 TV 토론은 정례화됐다.

국내에서는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TV 토론이 처음이다. 김 후보의 언변과 식견을 알리는 자리였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쏘아붙였다. 독기에 눌린 박 후보에게 오히려 동정표가 쏠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 많았다. 2017년 19대 대선 TV 토론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라고 다그치는 장면은 지금도 안 후보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TV 토론은 후보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조건을 다는 것은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후보답지 못한 처사다. 선거 전략상 지지율 1위 후보는 TV 토론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뒤쫓는 후보들이 일제히 1위 후보를 공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칫 공세에 말려들어 실언이라도 한다면 지지율을 잃을 수도 있다.

윤 후보 측은 지지층이 겹치고 지지율이 주춤하는 단일화 상대 안철수 후보에게 괜히 판을 깔아줄 이유도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TV에 비친 모습을 보면 윤 후보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큼 달변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정치 초년병이라 정책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계산된 발언만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직설적 표현이 많아 위태위태한 순간도 간혹 보였다.

그렇더라도 토론을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당당하게 맞서고 판단은 유권자에게 넘겨야 한다. 유권자는 청산유수처럼 번지르르하게 말만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토론을 보며 됨됨이, 자질, 정책에 대한 이해도 등을 평가한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는 부수적인 문제다. 민주당이 통 큰 척 국민의힘의 제안을 받아들여 31일 하루에 양자 토론도 하고 4자 토론도 하자고 역제안한 것 또한 정치적 계산일뿐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3자 토론을 하자는 안 후보의 제안은 TV 토론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TV토론에 당당히 나서라. 법원이 1, 2위 후보끼리의 양자 토론에 제동을 건 것은 방송의 영향력을 감안해 유권자들의 선택권과 알권리를 보장하고, 군소 후보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다. 국민의힘의 모습은 이러한 법원의 결정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귀성을 망설이며 설 연휴를 맞는 유권자들은 설 밥상머리에서 TV토론을 보길 기대한다.

yna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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