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분청사기에 반하다.... 도재모 박소은 도예전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김천시립박물관 3층, 전시실에 들어섰다. ‘김천분청사기 대표작가전’을 보기 위해서다. 데스크에서 안내 리플릿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 리플릿에도 이름이 붙어 있었다. '김천 분청사기에 반하다. 김천 분청사기 대표작가전’ 그 대표는 도예가 도재모 박소은이다.

거기 안내문 첫 머리에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를 줄여 부른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태두라고 일컫는 우현 고유섭이 이렇게 이름 지었다지 아마. 한자로 '粉裝灰靑沙器(분장회청사기)'이니까 풀어 설명하면 회색 태토 위에 정선된 백토로 표면을 바른 뒤 유약을 씌워 구운 도자기를 말한다. 조선 초기에 유행한 것인데, 도재모 박소은 두 작가가 오늘날에 되살려 작품화하고 있다.

12월 7일(화) 늦은 시각이었다. 한산한 전시장에 들어서니 꽃잎이 살랑이며 환영했고 황악산에 뿌리 내리고 있는 소나무도 몸을 크게 흔들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유익에 사람들이 목말라 하듯 전시된 분청사기들은 사람, 즉 관람객들에 목말라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도 그 도자기들에게 손가락 끝의 작은 물 정도는 된 것 같아 기뻤다. 개울물이 모여 내가 되고 또 그 내가 강, 그리고 마침내 대해가 되듯 관람객들이 모여 여기 전시된 분청사기들을 기쁘게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도재모와 박소은은 이른바 향토작가들이다. 김천에 터 닦고 김천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예인들이다. 향토작가라고 해서 이들의 예술적 감각과 실력이 중앙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보다 뒤진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 두 작가는 중앙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예술적 눈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구? 전시회 회수와 수상 경력이 그것을 말해준다. 도재모 개인전 11회, 초대전 및 단체전 200여 회, 박소은 개인전 5회, 단체전 100여 회. 말이 쉬워서 100회, 200회이지 아무나 쌓을 수 있는 탑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도재모 박소은 두 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지냈다. 도예의 장인이라는 뜻이다.

이런 전문 예능을 확보하고 있는 두 작가가 의기투합해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열고 있다'라고 했으니 현재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으리라. 11월 2일 시작해서 12월 10일까지이니 한 달 조금 넘게 전시회가 관람객을 부르게 된다. 어떤 내용의 전시회든 전시가 빛을 발하는 것은 찾는 발걸음이 많을 때이다.

도재모 박소은 두 작가를 김천에 뿌리내린 향토작가라고 했는데, 이번 전시된 작품들에서도 그 사실이 오롯이 묻어난다. 도재모 작가가 13점, 박소은 작가가 15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박 작가는 전 작품 제목이 동일하게 '꽃'이다. 하지만 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외로운 꽃, 재잘대는 꽃, 군계일학이라고 자찬하는 꽃, 서로 봐주기를 바라는 꽃... 보는 이가 감정을 이입해 심미안을 발휘하면 과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박소은의 '꽃'

도재모의 작품은 김천의 혼과 정신을 농축해 놓고 있다. 그뿐 아니라 투박한 분청사기의 외형도 딱 김천이다. '황악'은 김천을 상징하는 산이요, '김천송(金泉松)'은 김천의 소나무다. 황악산 정기는 김천인을 뒷받침하고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황악산 정기로 역대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되었고, 그것은 피압박 민중들이 마지막 의지하는 도피성이기도 했다.

또 김청송은 어떤가.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자고로 지조와 용기를 상징했다. 도재모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김천송에서 그것이 증명된다. 나무의 정정함은 김천인의 기상을 말해주고 있고, 푸른 솔잎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미를 유추해 낼 수 있다. 또 거친 표피에선 세파를 헤쳐나온 민중들의 삶이 읽혀진다.

도재모의 전시 작품 중 두 주제(황악, 김천송)를 벗어난 것이 세 점 있다. 야생화, 바람, 몽중흑룡이 그것인데, 이것들도 모두 김천을 보금자리로 하는 소재들이다. 야생화는 김천 근처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을 말하는 것이다. 바람은 김천을 스쳐 지나가면서 여름의 시원함과 겨울의 매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몽중흑룡’은 다소 이색적인 제목 같은데, 한자로‘夢中黑龍’으로 표기될 테니 꿈 속에 만난 흑룡을 가리킬 것이다. 남가지몽(南柯之夢)과 같은 재미있는 얘기가 담겨 있을 법하다.

우리 지역에 이런 도예가들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화초는 정성들여 가꿀 때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갖고 찾아 세상에 드러내 줄 때 드디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런 이치에 공감한다면 이들의 전시회를 많이 찾아보시라.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안내자가 되어야 하고 한 번 갔던 사람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관람하는 게 좋겠다. 예술을 보는 눈은, 키우는 만큼 넓고 깊어진다고 했으니까. 시간은 넉넉하다. 12월 10일까지이다.

도재모의 '몽중흑룡'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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