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春雪)
詩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멧부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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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시샘하는 춘설(사진=연합뉴스) |
* 정지용의 춘설(春雪)이다. 춘설은 봄에 내린 눈이다. 눈이 오긴 왔으나 봄 기운에 맥을 못 추는 심상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겨울의 상징인 눈이 얌전을 빼고 있다. 스스로가 아니라 타의(他意)다. 눈이 녹아 비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가 지난 지도 일주일이 흘렀다. 절기상으로도 봄 기운이 완연할 때이다. 정지용의 호가 뭐예요? 조카의 물음에 정지용은 우리말을 너무 사랑해서 한자에서 유래한 아호가 없다고 대답해 준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 정지용은 우리말의 조탁자이다. 감각적 표현도 다양하다. 이 시에서만 해도 촉각(이마에 차라, 서늘옵고), 시각(파릇한 새순, 오물거리는), 공감각(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좋든 싫든 이별은 섪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눈은 곧 녹아 없어질 것이기에 아쉽고, 한 해의 겨울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겠기에 슬프다. 시인은 "꽃이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로 결별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耳穆).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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