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조(思潮)는 단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다. 이것의 특징은 개별성과 다양성이다. 여기에 상대성을 넣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다 보니 모든 게 자기중심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또 살아가든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의 존재 기반이 중요하다. 이 존재 기반엔 정신적 가치보다도 물질적 가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다. 시쳇말로 물질이 중요하지 정신이 밥 먹여주냐는 식이다. 배부른 돼지면 족하지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현 구조 해체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역사가 심한 도전을 받는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친일(親日)은 우리에게 수용 불가의 단어였다.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다. 상대적으로 일본에 우호 관계였던 군사정권 때에도 친일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친일을 내놓고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일본인은 검소하다느니 친절하다느니 심정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줄곧 있어 왔다. 하지만 친일을 이론화하며 당당하게 주장하기는 안병직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안병직은 서울대 교수로 경제사학자로 불리었다. 그가 이론적으로 제시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한때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영훈, 김문수 등이 안병직의 제자로 이 이론을 신봉하며 학생 및 노동현장에 적용을 시도한 인물들이다.

이영훈은 스승의 이론을 발전시켜 식민지근대화론을 체계화했다. 스승 안병직의 이론을 하나의 가설로 정립한 것이다. 요지는 일제 36년의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 그러니까 일본의 지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다는 논리다.

이것은 주류 경제학자와 역사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지엽적인 문제로 현상을 일반화시켰다는 것.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끼친 부정적 영향은 엉뚱한 데로 확산되었다. 반민족 친일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 그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흡인력이 컸다.

안병직과 그의 제자들의 주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일제 때 위안부 여성들이 전쟁터로 간 것은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러 간 것 등 사실을 호도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보수정당에서는 뉴라이트니 근현대역사교실 등을 조직해서 일제시대와 제1, 제3 공화국을 친일의 관점, 정권 담당자의 관점으로 보려고 했다. 일제시대사와 이승만 박정희 독재를 성공한 역사로 기록하고 싶어 했다. 박근혜 정권 때의 국정교과서 파동은 이런 데 기초한다.

한 젊은이가 친일파 후손의 호화주택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초라한 집을 비교하며 후자를 조롱해서 비난을 사고 있다.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뼈아픈 일은 없다. 피식민지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은 대충 세 갈래 정도가 있다. 식민지배를 돕는 자, 저항하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자, 침묵하는 다수. 해방되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역사의 큰 과오다.

이승만의 잘못이 크다.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장본이니까. 그를 국부 운운하며 떠드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는 이유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독일의 괴뢰 정권인 비시 프랑스를 도운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색출하여 죄를 묻는다고 한다. 민족 반역의 죄엔 시효가 없다는 것이다.

한 젊은이가 가난하게 살아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친일파 후손들과 비교하여 조롱했다고 해서 시끄럽다. 극우의 시각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이 같다. 그는 지난날 세월호 침몰과 백남기 농민 가족을 비하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잘못은 이 젊은이뿐만이 아니다. 전혀 죄 의식을 느끼지 않고 친일을 화두에 올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치인들, 학자들, 기업가들, 예술가들... 이들을 뿌리 뽑지 않으면 국가의 발전도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 한 걸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이런 말을 뇌까리는 그 젊은이 뇌의 구조가 궁금하다. 친일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신친일파들을 어찌 하오리까, 아, 통재(痛哉)라!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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