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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문홍연 | 승인 2021.01.10 12:20

#일상
가던 걸음 멈추게 하는....

(돼지고기를 굽는 식당 사장님...)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으로 
옛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 안도현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안도현의 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나오는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의 전문
***  ***  ***  ***  ***  ***  ***  ***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지가 며칠 되지 않아서 그렇겠지요. 괜히 산소에 들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차에 올라탔지요. 소주 한잔 부어놓고 
한참을 앉았다가 산을 내려 왔습니다.

지례면 소재지를 지나가는데 길 옆 식당의 야외 천막에서 돼지고기 굽는 연기가 올라갑니다. 마침 고기를 굽던 주인장이 다 익은 돼지고기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마침
귀농하려고 농지에 진입로를 만들고 있다는 친구가 생각나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포크레인 기사와 셋이서 맛있게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불현듯 옛날 생각이 떠오르네요
안도현 시인의 시와 함께...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적었듯이 예전 푸줏간에서 돼지고기를 팔 때는 철 지난 신문지에 싸서 줬지요. 비닐봉지는 한참 세월이 더 지난 후에 나왔습니다

그날이 지례장날이었는지는 모르구요. 읍내(지례사람들은 면소재지를 읍내라 부릅니다)에 가셨던 아버지가 돼지고기를 사 오셨습니다. 요즘에는 삼겹살을 최고로 치지만 옛날에는 뒷다리 살이 가장 선호하는 고기입니다. 비계가 적고 살코기가 많았으니까요

그날 저녁 어머니가 큼직하게 썰은 돼지고기에다 고추장 양념을 발라서
검정후라이팬에다 넣고는 석유곤로 위에서 맛있게 구웠습니다. 식구들이 많다보니 금방 바닥을 봤습니다. 비계 몇 점은 된장찌개 속으로 들어갔지만요.

젊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할 일이지요
4~5십년 전하고 오늘을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구요. 사실 그 당시는 돼지고기가 무척 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생일 때나 되어야 비계가 둥둥 뜨는 멀건 돼지고기국을 먹을 수가 있었지요

시인도 돼지고기 두어 근 끊는 것이 큰 결단이라고 했지만, 정말 여간한 마음 가지고는 사오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요
70년대 이전의 농촌은 그만큼 사는 것이 힘들었고,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시에서는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고기를 구웠다고 했지만 마당이 너른 농촌이라 그럴 필요까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제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저 역시 나이가 들어서 자식 출가도 시켰습니다.
요즘은 먹을 것이 흔하고 살기도 좋아 졌지만, 하나같이 한두 명의 자식들 건사하기도 힘이 든다는 데, 그렇게 가난함 속에서 우리 부모세대에는 여러 자식들을 어떻게 먹여 살렸을까요?

부모님이 생각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자전거 뒤에다 돼지고기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서는 호기롭게 사립문을 들어오시던...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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