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시장은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같이 하고 있는 특이한 장이다. 매일 가게 문을 여는 곳이 있지만 5일마다 서는 장도 함께 있다. 매주 1일, 6일(11일, 16일, 21일, 26일)이 왜관 정기 장날이다.

코로나19는 이곳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곳곳에 '점포 세, 점포 정리'라는 펼침막이 붙어 있는 것으로 봐 불경기임을 알 수 있다. 이 경기가 펴질 날이 언제쯤일까?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손님이 있든 없든 상품을 진열해 놓아야 하는 것이 상인의 운명이다. 해가 중천에 있는 늦은 오전 시각이지만 대체로 한산했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벌써 시장의 분위기는 타 올랐을 것이다.

가게 전체를 대형 천막으로 둘러놓았다. 옆 상점 주인에게 이렇게 해 둔 이유를 물으니 오전엔 손님이 없기 때문에 오후 2~3시쯤 나올 거라고 했다. 보는 이의 마음이 무거웠다.

시장 통 길 한가운데 노점을 펼쳐놓고 커피와 잔 막걸리, 소주를 팔았다. 한 접시 놓여 있는 순대는 서비스로 제공되는 안주이다. 보아하니 손님은 없고 상인들이 모여 낮술로 시름을 달랜다. 신경림의 시 ‘파장’이 떠올랐다.

사진으론 밝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분위기가 어두웠다. 경기가 많이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기능을 하는 곳이지만 특히 정기시는 만남이 이루어져 소식을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란 녀석 때문에 만남 자제가 봉쇄되고 있으니...

'선학'은 6,70대 사람들에겐 알루미늄 냄비로 상징되고 있다. 모든 알루미늄 냄비엔 원을 테두리로 한 그 안에 다리가 무척 긴 학 그림이 상표로 붙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플라스틱의 파고(波高)가 워낙 높아 뒤로 밀려 났다며 안타까워했다.

기름집은 들깨 또는 참깨로 기름을 짜 주는 곳이다. 예전에는 기름만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데, 지금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영역을 넓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각종 젓 종류와 메주, 청국장 심지어는 화초도 팔고 있었다.

시장을 돌아보는 동안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기름집. 안에선 예닐곱 명이 순서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 사이 바깥에서는 흥정이 성사되어 콩과 호박씨가 팔려 나갔다. 벌써 씨 뿌리는 봄을 준비하나 보다.

서양 사람들은 극혐의 대상이라지만 우리의 음식엔 빠질 수 없는 양념이 마늘이다. 접 단위로 파는 마늘은 사는 사람이 나타나면 마른 잎과 줄기는 버리고 마늘만 다듬어 넘겨진다. 고객의 손을 그만큼 줄여주는 것이다. 예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서비스다.

허락을 받고 이 옷 수선집 앞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시장을 돌았다. 옷 수선은 요즘 어떠시냐고 물으니 코로나 이후 손님이 좀 늘었다고 했다. 이것도 좋지 않은 경기와 관계가 있으리라. 새 옷을 자제하고 가급적 옷 수선으로 대체하는...

식당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연탄. 지난 세기 중엽엔 이 연탄이 우리네 서민의 주 연료였다. 따라서 하루에도 여러 건씩 연탄 중독 사(死)에 대한 것이 신문 기사화되었다. 불경기로 값 싼 연료인 연탄이 재사용되고 있다. 어설픈 향수에 젖는다.

건강한 삶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서양 의학이 건강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가운데 한의학도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다. 그 틈새를 민간요법이 파고 들고 있다. 건강원도 그 중의 하나인데, 쑥 대추 더덕 감초 등 갖가지 약재를 갖추어 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다.

노점을 펼치고 있는 상인이 있어서 어떤 상품인지 물어보니 남녀노소 모든 계층 사람들에게 필요한 양말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왜 하필 양말? 발은 우리 몸의 신경계를 콘트롤하는 타워와 같은데 잘 보호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제품은 좋으나 값이  저렴한 여러 종류의 양말들이 진열대로 쏟아져 나왔다.

영남 지역은 상대적으로 불교 세가 강하다. 삼국시대 불교 전래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 이야기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런 영향이리라.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불교 전문 상점이 있다. 이곳에는 불상부터 동자 승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교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손님이 없기로는 IMF 때보다 더 하다고 했다.

수제 공방, 손으로 직접 만든 옷, 가방, 허리띠, 앞치마, 손수건, 버선 등... 만든 이의 공력이 많이 투여된 작품성 제품들이다. 장인이 빚어낸 아름다운 제품들이다. 경기의 한파가 여기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궁여지책의 아이디어 '일부 품목 장날은 반값'이란 안내판이 웃음 짓게 한다.

재활용 옷. 하루에 한두 벌이 고작이다. 적자 운영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파, 열무, 배추 등을 다듬어 손님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소일거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런 일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말이  콧잔등을 짠하게 한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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