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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진도(珍島)에서의 1박2일...
문홍연 | 승인 2020.10.18 14:51

#일상 진도(珍島)에서의 1박2일...

진도가 정말로 멀기는 합니다. 일곱 명의 고등학교 동기생들이 승합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길들이 서울로만 향하고 물자까지 수도권으로 모여드니 경북 김천에서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진도까지는 엄청나게 먼 거리입니다.

물리적인 거리도 5시간이나 떨어져 있지만 심리적인 거리(경상도·전라도)는 더 멀리 떨어져 있지요. 그렇게 멀고도 먼 진도 땅을 오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후 6년도 넘게 지난 오늘에서야 겨우 밟았습니다.

저는 진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진돗개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의 아버지 유봉과 동호 남매가 구성지게 불렀던 '진도아리랑'도 연상이 되구요.

며칠 전 친구들과 진도여행을 계획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큰 섬이더군요.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크다고 합니다. 지금은 31,000명에조금 못 미치는 인구가 살고 있고, 다도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230개의 크고 작은 유인도와 무인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마음속에 있던 진도여행을 실행으로 옮긴 진짜 이유는 몇 년전에 상영되어 1,760만 명이 봤다는 "명량"이라는 영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 극장에는 "명량"이외에 다른 영화는 볼 수도 없었고 저 영화만큼은 꼭 봐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지요.

그랬던 진도여행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습니다. 16일 아침 8시 30분에 김천을 출발했습니다. 4시간 30분 만에 진도대교를 지나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도착을 해서는 진심이 담긴 큰 절을 올리고 나니 그제서야진도에 왔다는 실감이 납니다. 또 영화 속에서 봤던 울돌목(명량)을 실제로보니 이해가 안 되었던 영화의 여러 내용들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 봅니다. "올돌목"의 가장 좁은 부분은 293m이며, 평균 수심은 19m인데 초속 6m가 넘을 정도로 빠르고 거센 조류가 흐른다고 합니다.

굉음을 내며 흐르는 물살을 보고 있자니 무섭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순신장군은 빠른 조류를이용했기 때문에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과 싸워서 31척을 격파할 수가 있었겠지요.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울돌목의 조류를 전술에 이용한 것도 있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尙有十二 微臣不死(상유십이 미신불사)"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하찮은(이순신) 신하는 살아 있습니다"로 상징되는 이순신의 애국심과 탁월한 리더십이 더 크겠지요?

밀물 때의 빠른 물살을 보기 위해서 저녁에 다시 들렸습니다. 밤에 바라보는 울돌목의 조류는 더 빠르게 흐르는 듯 했습니다. 명량대첩이 장군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라 그 당시 진도에 사셨던 수많은 백성들의 승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尙有十二 微臣不死" 그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이 말 외에 달리 무슨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있을까요?

시간이 촉박해서 진도의 명물이라는 진돗개는 그냥 지나치듯이 둘러보고는 아쉽게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속설에 '진도에 가면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마라'고 한다지요? 첫째가 글씨, 둘째가 그림, 세 번째가 노래 가락인데 그중 첫 번째 두 번째를 보기 위해서 소치 허련(許鍊·1808∼1893)이 거처하셨다는 운림산방(雲林山房)으로 향했습니다. 의신면 사천리 첨찰산 아래에 자리잡은 운림산방은 말 그대로 구름 속에 쌓여 있는 듯 했습니다.

나눠준 안내문을 조금 인용하면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내려 주었다는데 이는 중국의 대화가인 대치 황공망과 비교한 것으로 추사는 소치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다지요?

시서화(詩書畵)로 당대를 휘어잡은 소치였지만, 1856년 스승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소치가 말년을 보냈던 초가집은 새로 지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았고 앞의 건물도 보수 중이라 출입이 통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듯 노송들이 즐비했고 잘 꾸며진 정원하며 이제는 꽃을 다 떨궜지만 수백 년은 넘었음직한 배롱나무가 고매함을 자랑하듯 빈 몸으로 운림산방을 지키고 있더군요.

전시된 여러 글씨나 그림들을 둘러 봤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뭐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고, 그냥 멋지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를 않네요.

(진도군 관광책자에 나오는 셋방낙조)

다음은 우리나라에서 일몰의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는 세방낙조를 보려고 차를 부지런히 달렸습니다만.... 한 달 가까이 좋았던 가을 날씨가 무슨 조화속인지 빗방울도 떨어지고 구름이 꽉 끼었습니다. 역시나 최고의 풍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여주지를 않는가 봅니다. 아쉬웠지만 어쩌겠습니까.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한참 달려서 진도읍에 도착을 했습니다. 갈치조림과 병어조림으로 맛난 저녁을 먹고 모텔에다 여장을 풀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영화 "명량 회오리바다"의 감흥을 이어가고자 벽파진(碧波津)에 있는 이순신장군 전첩비를 찾았습니다.

사진은 벽파정을 오르는 계단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석공들이 손수 망치와 정으로 쪼아서 만든 정성이 많이 들어간 돌계단이군요. 계단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첩비(戰捷碑)앞에 섰습니다. 저 아래에는 삼별초군과 여몽 연합군이 회담 장소로 사용했다는 벽파정 정자가 보이고, 더 멀리 산 너머에서는 장엄한 붉은 해가 떠오릅니다. 이런 맛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겠지요? 제가 사는 김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은 풍광들입니다.

"이순신장군 전첩비"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커다란 천연 거북바위 위에다 비석을 올렸군요. 크기가 동양최대라고 합니다. 수백 년 전의 비장한 역사를 말해주듯 비문 내용은 사뭇 장엄합니다.

비문의 글은 '이은상'선생이 짓고 글씨는 '손재형'서예가가 썼다고 합니다.

비문의 앞부분만 소개를 하겠습니다.

'벽파정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1597)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령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는 상기도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매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닷목을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7일엔 적선 13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9일에도 적선 2척이 감보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은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우수영으로 진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3척 적은 배로써 330척의 적선을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사만고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이하 중략

평소 애국심이란 걸 전혀 못 느끼고 사는 농부지만 오늘 아침에는 비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순간 눈시울까지 뜨거워지네요. 이것이 애국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비문을 끝까지 읽다보니 우리나라 전 국민이 이순신장군을 성웅으로 칭송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미처 보지 못한 진도의 다른 볼거리들은 후일에 다시 온다는 기약을 하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서 진도대교를 넘어 갑니다. 저 멀리 이순신장군님의 동상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것일까요? 저만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구요

이것으로 6년 전부터 생각했던 진도 여행도 끝이 났습니다. 승합차는 목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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