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7년의 홍수환처럼 - 김천일보 김천iTV

예부터 군주는 태평연월(太平烟月)을 희구했다. 백성도 마찬가지다. 백성의 태평연월은 의식주가 기본이다. 이것 해결 없이는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민심이 흐트러졌다.

코로나19가 반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금세 물러갈 것 같지도 않다. 내년 중‧후반기까지 코로나19의 이런 감염 추세가 계속될 것 같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찔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년에 비해 긴 장마가 또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긴 장마도 문제지만 폭우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도 적지 않다. 이재민들을 어떡하면 좋은가.

자연은 네 편 내 편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만물에 공평하다는 말일 것이다. 허나 지금 과연 자연이 사람의 편인지 회의하게 된다. 공평한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나라가 돌아가는 꼴도 아니꼽긴 마찬가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면 좋겠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불만을 표출한다. 진영이 너무 확연히 갈려 교점(交點)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다간 작은 희망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절망이 우리를 에워싸지 않았으면 좋겠다. 철학자는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는 모두 우리의 삶에 질곡으로 작용한다.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시내 중심지의 상가는 한 점포 건너 폐업 안내문이다. 만남 자체가 금기시되니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햇볕 없는 긴 장마는 농사에 훼방 요인이다. 일조량이 적으니 과일이 제대로 숙성하지 못한다. 숙성은커녕 쉽게 상처가 나고 허물어진 낙과(落果)가 많다.

이런 과일은 상품 가치가 없다. 농군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랴. 공장 등 다른 분야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경기가 회복되어야 할 텐데, 전망은 초록빛이 아니다.

1977년 11월 27일 일요일 점심식사를 하며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직전 라운드에서 4번이나 다운되며 패색이 짙었던 홍수환(오른쪽) 선수가 카라스키야를 링에 뉘고 있었으니…’4전5기’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밴드 회원이 SNS에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1977년 때의 것이니 40년 하고도 3년이 덧붙은 때의 일이다. WBA 주니어 페더급 세계 챔피언 쟁탈전이 파나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엑토르 가라스키야는 당시 파나바의 영웅이었다. 핵주먹으로 알려져 있었고 내로라하는 유명 경기만 쳐도 11전 11승 11KO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선수에게 홍수환이 덤빈 것이다.

적진 파나마로 날아갈 때만 해도 그가 챔피언 벨트를 갖고 오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단지 그의 용기만을 가상하게 여겼을 뿐... 권투시합 중계를 두고도 방송국 내 논란이 있을 정도였다.

1라운드에서는 서로 치고 박고 선전을 했다. 주먹 교환 회수도 비슷했고, 밀고 당기는 기세 싸움도 오십보백보였다. 그러나 2회전에서 홍수환은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카라스키야의 핵주먹에 네 번이나 다운됐다.

두 선수의 경기 진행이 더 이상 어렵겠다고 생각한 주심이 경기 중단, 즉 카라스키야의 KO승을 선언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홍수환에게 경기를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오른 팔을 번쩍 들며 싸우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모두들 안쓰럽게 여겼다. 챔피언도 좋지만 저렇게 싸우다간 몸을 해하는 건 아닌지 염려들을 했다. 그런 가운데 3라운드 벨이 울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1분 쉬는 동안 새로운 기(氣)라도 받은 듯 카라스키야를 매몰차게 몰아부쳤다.

홍수환의 일방적 공격 속에 유효 펀치가 작렬했다. 카라스키야는 링 위에 열 십자 모양으로 드러누워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홍수환을 '4전 5기의 사나이'라고 했다.

2라운드에서 네 번 다운 당한 사람이 3회전에서 상대를 공격,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카라스키야는 뒤에 파나마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홍수환은 복싱 도장을 차려 후배 양성에 주력했다.

지금 우리나라 모습은 여러 가지가 겹쳐 홍수환이 네 번 다운되었던 2라운드와 같은 상황이다. 홍수환이 절망하지 않고 3라운드에서 상대를 KO시키고 챔피언이 되었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오면 좋겠다.

전제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유대감 또는 공동체성 회복이 중요하다. 약점을 찾아 서로 헐뜯을 게 아니라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노력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건 가(可)하나 잘한 것까지 깔아뭉개서는 안 된다.

이명재 목사(본 싡문 발행인, Ph. D)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대동 정신을 가질 때 승기(勝氣)를 만들 수 있다. 지도층부터 본을 보여야 한다. 인간의 근본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 날을 기다려 본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