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

              詩 / 이해인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짐짓 모른 체하던
어느 옛 친구를 닮았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함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얄밉도록 오래 부는
눈매 고운 꽃샘바람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

글은 자고로 쉽게 쓸 일이다. 시는 더 그렇다. 이해인의 시가 많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를 꼽자면 시가 쉽다는 것이다. 술술 읽힌다. 대학 교수도 읽고 웃음 지을 수 있고, 초등학교 학생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이해인의 시다.

'꽃샘바람'도 그러한 시 중 하나다. 어려운 문맥이 없고 이해 못할 어휘 하나 없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를 사용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 하지만 아주 적절하게 단어를 배치한 현실의 노래이다. 천진난만한 언어의 마술사다.

요 며칠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꽃샘추위라는 말을 이럴 때 흔히 쓴다. 시인은 이런 단어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적절한 단어 찾기에 나선다. 거기서 낚아 올린 어휘가 '꽃샘바람'이다. 꽃이 시샘하는 바람,  불어오는 봄바람이 차갑다고 느껴질 때 그 바람을 꽃샘바람이라 했다.

날씨만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옛 (이성)친구를 생각하는 끈끈한 마음(1연), 서정주의 시어를 빌리면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소쩍새의 울음'이 2연의 시상과 오버랩된다. 시인은 그런 꽃샘바람까지 '고운 눈매'로 바라보고 있다(3연).

시인은 대중의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정신적 의사이다. 3연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인고의 마음이 마지막의 짤은 연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로 귀결된다(耳穆).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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