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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표 칼럼] 검판법비(檢判法匪)의 뿌리, 제국일본홍이표(일본 경도대 철학박사, 사상문화학)
홍이표 | 승인 2020.02.15 19:03

나고야시(名古屋市) 교외에는 철거 위기에 내몰렸던 메이지(明治) 시대 건축물 70여 동이 그대로 이축되어 보존 중인 ‘메이지무라’(明治村)가 있다. 근대 시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과 애착이 만들어 낸 독특한 테마 파크이다. 

그곳엔 내가 주임목사로 일했던 탄고미야즈교회(丹後宮津教会)의 근처에 있던 미야즈재판소(宮津裁判所, 1886년(명치19) 건립)가 옮겨 와 있는데, 내부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그런데 뭔가 낯선 풍경이다. 보통은 단상 중앙에 판사가 있고, 하단 좌우에 검사와 변호사가 착석하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아래 우측에 변호사만 외로이 앉아 있고, 판사와 검사는 모두 위에 앉아 한 팀을 이룬 듯한 모습이다. 한국의 검찰과 법원의 밀월 관계를 본능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현장 설명서에는 이렇게 써 있다.

“법정 안은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 있고, 단상 위에는 판사와 검사, 서기가 자리하고, 변호사와 피고인석은 하단에 놓여 있습니다. 이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는 검사와 변호사가 동등한 입장이 아니었음을 이 구조가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현 장면은 엄숙한 표정으로 검사가 (기소장을) 낭독하는 풍경으로 완성돼 있습니다. 책상 위에 양손을 올린 채 검사의 기소에 따라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것을 주장하는 판사. 기소장 너머의 피고인석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검사. 그 검사의 발언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써가며 기록에 집중하는 서기.

그리고 하단에서는 늙은 변호사가 의자에 앉아, 손 위의 변론 자료를 검토하며 기소장 낭독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배려하면서 법정 경비가 부동자세로 서 있습니다. 밀랍 인형이라 움직이지는 않습니다만, 악을 똑바로 직시하려는 의지나 긴장감, 그리고 삿갓을 쓴 피고인의 낙담하는 모습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해 연말에는 국회에서 ‘공수처법’이 통과되어, 지금껏 무소불위의 지위였던 검사와 판사들까지도 수사 및 처벌 대상이 되는 길이 열렸다. 신년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 안대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 검사들이 작성한 검찰 ‘진술 조서’에 대해 조사받은 피의자가 그 내용을 부정하면 증거능력이 사라지게 된다. 검찰 기소장을 그대로 신뢰하며 이른바 ‘짬짬이’ 판결을 자행해 오던 판사들도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한 제대로 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검판들에게는 그야말로 천지개벽... 환장할 노릇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일부의 선각자들이 사법제도의 근대화를 위해 애쓴 적이 있지만, 이내 일본에 국권이 넘어가면서 경찰 및 검사의 고문과 협박 등에 의한 허위자백, 그를 토대로 작성한 ‘조서’가 증거로 작용하여 이른바 ‘조서재판’이란 말이 생기기까지 했다. 

검찰은 ‘조서’를 통해 없는 죄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있는 죄도 없앨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밀착된 재판부는 그 조서를 토대로만 판결하면 되는 편의을 누리며 ‘검판일체’(檢判一體)의 종양 덩어리는 뼈 속까지 파고들었다.

‘105인 사건’(1911)이나 ‘조선어학회 사건’(1942) 같은 일제에 의한 고문 날조 사건은, 해방 이후에도 독재에 저항하는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의 죄형을 날조하여 손쉽게 구속시키는 원형이 되었다. 

일제시대의 판사들은 모두가 조선어를 모르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검사가 만들어 온 조서에 대한 의존도가 본국(일본)보다도 심했다. 전 세계 사법제도에서 검찰의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는 나라는 여전히 일본과 한국 두 나라 뿐이다. 

일본은 1982년에 대심원(최고재판소 격)에서 “현행범이 아닌 피의자에 대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해 상당 부분의 조서 증거 능력을 이미 부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해방 이후에도 일제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고수해 왔다. ‘조서’의 증거 능력 인정은, 검사와 판사의 ‘짬짬이’ 재판을 만연케 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한국의 법조계를 ‘검판법비’(檢判法匪)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요 며칠, 검사 출신 권성동의 강원랜드 비리 수사에 대한 내부 방해에 이어 법원도 연속 무죄를 선고하는가 하면, 양승태 대법원장과 그 수하들이 주도한 사법농단에 대해서도 무죄 선고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윤석렬 검찰의 폭주에 대해서도,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등을 대부분 발급하는 등, 법원과 검찰은 마치 한 패인 듯 움직여 왔다. 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일부 ‘검판법비’(檢判法匪)들이 마지막으로 발악(發惡)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그들의 뿌리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제국일본’이 있다. 

홍이표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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