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목사

행정 구역상으론 시(市)라지만 시 근교다. 시내에서는 좀 떨어진 농촌에 나는 살고 있다. 가능한 우리 지역에서 생필품 따위를 사서 쓰려고 한다. 허나 가끔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급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 나의 경우 거기에 포함된다.

​낙향 초창기에는 지역의 작은 서점을 통해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직접 주문하는 것보다 더디고 값도 더 치러야 했다. 정가에 오고 가는 품을 생각하니 마음의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오늘도 책 한 권을 주문했다. 글을 쓰는데 급히 참고할 책이다. 그동안 쌓인 적립금을 전용(轉用)하고 나니 인터넷 서점엔 1,100 원만 송금하면 되었다. 책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머지 금액은 무통장 입금하면 끝이다.

​입금 방법은 텔레뱅킹. 군색한 살림에 통장 비어 있는 것이 문제지, 잔고가 있다면 은행이 드문 농촌 지역에선 텔레뱅킹처럼 편리한 심부름꾼도 없다. 전화기를 통해 1,100 원을 송금하는 데에도 큰 액수를 보낼 때와 시간과 공력이 똑같이 든다.

​이런 상념을 하면서 전화기 숫자를 눌러댔다. ‘보내는 액수에 비례해서 시간도 소요되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그런 날이 올 지도 모르지. 내가 젊었을 적만 해도 돈을 송금하기 위해서는 은행에 가야만 하지 않았나. 이런 편리한 날은 상상의 영역이었지.’

​텔레뱅킹이니 인터넷뱅킹 등은 정말 상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시간과 공력이 달리 적용되는 텔레뱅킹의 날도 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기기(機器)가 사람의 마음만 읽어 주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며 텔레뱅킹을 하고 있는데 전혀 엉뚱한 멘트가 흘러 나왔다.

​"귀하의 통장에서 삼백 원을 인출하여 인터넷서점 통장으로 송금하겠습니다. 맞으면 1번, 취소하시려면 2번을 눌러 주십시오,"

​이상했다. 분명히 '일(1)-일(1)-영(0)-영(0)'(1,100원)을 눌렀는데 왜 '삼백(300)원'이란 멘트가 나오는 거지? 얼른 취소를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잘못 누르지 않도록 손가락을 긴장하게 했고, 음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역시 앞엣것과 같이 '삼백(300)원'을 송금하겠다는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순간 생각해 보았다. '천백원'이 '삼백원'으로 들린 것이 아닐까. '삼백'의 초성 시옷(ㅅ)과 '천백'의 초성 치읓(ㅊ)은 둘 다 잇소리(齒音)에 해당한다. 소리의 갈래가 같다.

​따라서 '삼백'과 '천백'이 비슷하게 들린다. 특히 기계를 통해 나오는 음성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동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텔레뱅킹을 사용하는 은행에서 이 점을 고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백원'을 '일천일백원'이라고 멘트를 내 보내면 적어도 '삼백원'으로 듣는 일은 없지 않을 것이다.

​귀의 활동이 아직은 잦아들지 않고 있는 내가 이런 혼동을 하는데, 나보다 연치(年齒)가 앞선 분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문자가 하나 날아들었다. 책 대금으로 송금하신 1,100 원 확인했다고…. 인터넷 강국이라지만 빈 구석의 의외로 많이 발견된다.

편집부  gc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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