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노예를 또 다른 노예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 노예 대신에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연료가 새로운 노예로 등장했다는 말이다. 

현대인의 삶과 현대문명은 화석연료가 제공하는 에너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도 없고 지탱할 수도 없다. 특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계, 시설, 장비 등은 거의 모두 화석연료 에너지로 움직인다. 

먼 옛날에는 인간 노예가 지금 기계가 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지금은 과거에 인간 노예의 육체가 떠맡았던 온갖 고된 일을 화석연료가 제공하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로 움직이는 각종 기계가 하고 있다. 

인간 노예를 대신하여 새로운 노예, 곧 에너지 노예와 기계 노예가 등장했다고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덕분에 인류는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더구나 기계 노예는 옛날 인간 노예가 가끔 그랬던 것처럼 반란을 일으킬 염려도 없다. 인내심 많고 순종적이며 고분고분한 게 기계 노예의 중요한 특성이다. 이렇게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아주 값싸고 말도 잘 듣는, 그러면서도 일은 훨씬 더 잘하고 많이 해내는 기계를 인간 노예 대신에 부리게 되었다.

이 새로운 노예는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할까? 어떤 조사에 따르면, 운전자 한 명이 자동차 한 대로 쓰는 에너지는 2000명에 이르는 사람의 힘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 한 명이 관리하는 에너지는 10만 명, 제트기 조종사의 경우는 무려 70만 명의 사람을 부리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석유 한 컵이면 50명의 인간 노예가 2시간 동안 자동차를 끄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많은 노예를 부리며 사는 게 현대인의 일상생활이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한 명이 해마다 소비하는 석유의 양은 한 사람당 174명의 가상 노예를 거느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미국 전체로 치면 미국 인구가 3억 명이 넘으니 자그마치 5000억 명이 넘는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현대인의 이런 삶의 방식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게 2009년 영국의 어느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한 에너지 실험이다. 4개의 방이 딸린 이 집 가족들은 어느 일요일 아침, 자기들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평범한 일상을 시작한다. 

우선 전등을 켜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오븐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 순간 바로 옆집에서는 100명의 실험 참여 자원봉사자가 100개의 자전거 페달을 밟아 실험 가정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간 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인간 노예’ 실험이다. 오븐에서 열을 내는 데는 24명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고, 고작 토스트 두 장을 굽는 데 11명이 필요했다.  그런 식으로 종일 페달을 밟다가 이윽고 해가 저물 무렵이 되자 차를 끓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체력이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서야 실험을 진행한 영국 공영방송 관계자들한테서 실험 사실과 내용을 전해들은 이 집 가족들은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고 한다. 평범한 휴일 하루를 보내는 데 쓰는 에너지가 얼마나 많은지, 그것을 사람의 힘으로 직접 생산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예가 필요한지를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페달을 밟던 자원봉사자 대부분은 임무를 끝내자마자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그 가운데 몇 명은 며칠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저술가이자 언론인인 앤드류 니키포룩이 <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이라는 책에서 전하는 에너지 노예 이야기는 현대 산업문명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번창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화석연료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화석연료를 에너지 노예, 기계 노예로 부리며 살다가 이제는 그만 거꾸로 우리가 화석연료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화석연료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화석연료 가격이 어떻게 오르내리는지에 따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은 물론 우리 삶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특히 석유가 그러하다. 

본래 노예 소유주들은 노예를 학대하면서도 죄책감이나 동정심 같은 걸 잘 느끼지 못한다. 노예가 제공해주는 삶이 너무나 안락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무생물 에너지 노예와 기계 노예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선사해주는 안락함과 편리함에 깊이 중독된 탓이다. 

장성익 소장(환경과생명연구소)

때문에 화석연료가 우리의 노예라는 것과 우리가 화석연료의 노예라는 것은 사실은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다. 화석연료를 노예로 맘껏 부리는 동시에 그 화석연료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노예의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노예는 옳지 않다. 노예는 없애야 한다. ‘에너지 전환’이 시급하고도 중요한 또 하나의 까닭이다.

장성익  gcilbonews@daum.net

장성익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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