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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작가 문홍연의 # 일상 - 성주군 초전면에서, 짧은 외출 큰 감동...!
문홍연 | 승인 2019.09.06 19:10

#일상
성주군 초전면에서
짧은 외출 큰 감동...!

우리는 성주군을 얼마나 알까요? 참외의 고장, 사드반대를 외치던 강인한 이미지,
그리고 군의 인구라고 해봐야 5만도 안 된다는 시골 마을, 국사책에서 배웠던 성산가야의 도읍지... 이 정도 아닐까요? 저도 성주를 자주 들립니다만 아는 것이라곤 참외 와 성밖숲,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댐, 가야산이 전부였습니다.

오래전 기억까지 더듬는다면 성주가
조선시대 때는 경상도의 4대 고을(경주 상주 성주 진주)이었다는 정도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 있네요. 제 주변을 돌아보니 유독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거리가 가깝다 보니 성주군 출신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김천에 자리를 잡았다는 뜻도 되겠지요. 

현재 우리나라 주민등록상의 성씨는 대략 280 여 개인데, 본관은 4천179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29 개나 된다고 하네요.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대표적인 성씨를 보면 인구 18만 명이 넘는 성주 이 씨를 비롯해서 벽진 이 씨, 성산 이 씨, 성주 배 씨, 성산 배 씨, 성주 도(都) 씨, 성주 여(呂) 씨, 성산 여 씨, 경산(京山) 김 씨, 성산 전(全) 씨, 성주 현(玄) 씨 등이 있다는 군요. 대단합니다. 성주가 진짜 대단한 동네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오늘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가 계획에도 없던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의 조선시대 문신 송희규(宋希奎)가 건립했다는 백세각(百世閣)이란 곳을 들렀습니다. 

1982년 8월 4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이 되었더군요. 지금은 ‘송희규’의 후손 ‘송만수’가 소유 관리하는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의  전형적인 맞배지붕  ‘ㅁ’자형 집입니다(고건축을 전혀 모르니 자세한 설명은 드릴수가 없습니다)

안내문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송희규는 1546년(명종 1) 당시에 세도가였던 윤원형을 탄핵하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전라도 고산으로 유배되었다가 5년 만에 풀려난 뒤 1551년에 백세각을 기공하여 이듬해 준공하였는데,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관리되고 있다"

진짜 이만하면 후손들의 정성도 알아 줄 만하지 않습니까?

또 누각 안에는 이이(李珥), 한호(韓濩), 채번암(蔡樊岩)의 친필이 각각 한 점씩 소장되어 있었는데 한호의 친필은 1970년에 도난을 당했다구요. 그리고 이 누각은 쇠못을 쓰거나 대패질을 전혀 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고, 목재를 자귀만으로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구요. 건물 면적은 179.1㎡이고 내부는 화강석, 외부는 자연석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목조 건물 중, 성주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1919년 3·1운동 당시 송준필(宋浚弼)을 비롯한 문인들이 독립청원장서 3천 장을 이곳에서 복사하여 성주 장날에 배포하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랍니다. 특히 이곳에서 국내 유림의 거두들이 모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한국독립 진정서인 파리장서를 기장하였다구요.

(파리장서 사건이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기 위해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작성한 사건을 말함)

(동행했던 친구가 친할아버지 함자를 가리키며 큰 절을 올리는 모습)

그리고 백세각을 가기 전 동네 입구에는 ‘백세각항일의적비’가 세워져있군요. 여기서도 설명문을 자세히 읽어 보니 성주 지역의 야성(冶城) 송 씨 문중이 백세각(百世閣)에 모여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巴里長書) 서명과 3·1만세 시위 참여를 논의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백세각 항일의적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하여 2004년 10월 29일에 건립한 기념비였습니다.

기념비로 오르는 계단 입구 오른쪽에는 송준필(宋浚弼)이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기초(起草)한 '통고국내문(通告國內文)'을 새긴 오석판(烏石板)이 세워져 있었고, 기념비는 거북상을 기단으로 하여 오석의 비신(碑身)과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마주 물고 있는 옥개석을 얹은 형태였습니다. 비신의 앞면에는 '백세각항일의적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고, 좌우 옆면과 뒷면에는 백세각의 유래부터 이곳에서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낼 일을 논의하고 유림 대표들이 여기에 서명한 사정, 성주 지역의 독립만세운동 상황과 그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 새겨져 있더군요. 
기념비 뒤편에는 송준필을 비롯하여 송홍래(宋鴻來) 송회근(宋晦根) 송규선(宋圭善) 송훈익(宋勳翼) 송천흠(宋千欽) 송우선(宋祐善) 송문근(宋文根) 송인집(宋寅輯) 송수근(宋壽根) 송명근(宋命根) 등 11인의 공적을 오석판에 세겼더이다.

2012년 11월에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을 했다고 합니다.

(2019년 3월1일에는 성주군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이곳 ‘백세각항일의적비’앞에서 개최하기도 했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일본의 군국주의가 다시 발호를 하는 듯합니다. 8.15해방 직후에 제대로 된 친일파 청산을 했어야 했는데.... 친일파의 후손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아직까지도 많은 상처와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성주군민들이 다시 보입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제 친구가 다시 보이는 하루였습니다.

문홍연  gcilbonews@daum.net

문홍연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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