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여름휴가와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어떻게 억지로 맞추어 여름휴가란 이름으로 가까운 곳을 다녀온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여느 사람의 휴가와는 차이가 있다. 몇 달 전부터 달력에 표시를 해 놓고 준비한 것은 못되니까. 

이번 여름은 큰 맘 먹고 휴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처가(妻家) 가족들과 날짜를 조정하며 맞추었다. 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날짜 잡기도 쉽지 않았다. 올해 구순(九旬)을 맞으신 장인어른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연세와 건강 등을 고려할 때 마지막 휴가 여행이 될 지로 모를 일이다.

경험 없음은 준비 초입부터 드러났다. 전화만 걸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묵을 방이다. 2박3일로 계획을 잡고 방을 알아보았지만 허탕이었다. 몇 달 전에 예약이 모두 끝났다고 했다. 모텔과 펜션이 동일했다.

그 중 한 곳은 혹 선약한 사람이 해약할 수도 있으니 예비 등록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어른을 모시고 가는데 그런 모험을 할 순 없었다. 생각 끝에 휴가지로 정한 지역에 사는 한 후배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에게 연락하면 무슨 방도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에서였다.

그는 그 지역에 쉼터를  하나 갖고 있었다. 들어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춤추는 정원'이라는 쉼터이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이 와서 쉬어 가는 곳이다. 일종의 힐링 센터로 보면 된다. 몇 달 전 친구들과 함께 그곳을 이용한 적이 있다. 언제 시간될 때 다시 오겠다고 해 둔 곳이다.

난 그 후배에게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물었다. "8월 8일, 9일 양일 간 '춤추는 정원' 방을 좀 쓸 수 있을까?" 후배가 대답했다. "알아 보고 전화 드릴게요." 당연하면서도 너무 간단한 대답이어서 무언가 내가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았다. 

"여름휴가는 다녀왔소? 아니면 언제 갈 계획을 잡아두었든지..."

정말 예정에 전혀 없던 물음이었다. 억지로 찾아서 한 질문이어서 건성으로 대답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도리어 그런 대답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의외로 진지했다.

"계획했다가 취소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일본을 다녀올 계획이었거든요. 올 초에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던 것을 지난 주 해약했습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국민 여론이 안 좋을 때여서 취소한 것 같군. 사람들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

나는 그들의 취소를 외부 시선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러나 그 후배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눈치 보며 사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 아베 정권이 하는 짓이 미워서 결정한 거예요. 돈(경제) 가지고 장난질하는 것처럼 저급한 것도 없습니다. 일행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구요."

늦은 저녁 식사 후, 밤 9시 종합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일 간의 경제전쟁을 자세히 보도했다.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이 한국 대법원 판결은 존중하되 배상은 하지 않겠다고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또 일본의 자민당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의 논조도 당당함에서 걱정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사진 = KUKINEWS

기자를 일본 현지에 특파해서 르포 식으로 취재한 것을 전화로 연결해서 생생하게 보내오기도 했다. 한국인 여행객의 감소로 일본의 상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의 지역구인 시모노세키(下關)엔 한국인 관광객이 급감해서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도 예약을 한 것이어서 마지못해 왔지만 소비를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찍기도 피했다. 항공사들이 일본 노선을 줄이고 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예상을 벗어난 한국민의 대응에 일본 조야(朝野)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그곳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유태인과 함께 우리 한국민은 세계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수하다는 게 아이큐(IQ)가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지혜롭게 극복하는 능력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세기 말 IMF 경제위기가 왔을 때 우리 국민들은 장롱 깊숙이 감춰두었던 귀금속을 꺼내어 빚을 갚는 데에 힘을 보탰다. 이게 국민의 단결된 힘 아닌가.

우리 지역에서 일하는 기관장 몇 사람에게 여름휴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부분 계획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도 휴가를 반납했는데 우리라고... . 이런 마음도 없지 않은 것 같았다. 일본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인데 휴가는 무슨 휴가... . 이런 생각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듯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전쟁은 총칼로 했지만 이젠 그것만이 아니다. 돈으로 압박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경제전쟁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친일의 부류들이 사라질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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