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피아(彼我)의 혼동, 그리고 파멸

지피지기(知被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말이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 병가(兵家) 사상의 진수를 담은 책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 유명한 경구(警句)조차 강 건너 불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구를 생각하는 것 자체를 불필요하게 여긴다. 오합지졸(烏合之卒) 속에 일어나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일본 앞에서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일본과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 편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일본에 밀리면 우리나라가 당한다. 어떤 전쟁이든 절대 필요한 것은 적진 앞에서 단결하는 일이다.

경제적 동물이라고 일컫는 일본이다. 경제 강국이라는 얘기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불리한 쪽은 우리다. 승산은 일본에 있다. 일본이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이유다. 이것 말고도 또 있다. 국가주의 아래 모이는 일본인의 집단주의이다.

사진 = 미디어 오늘

일본의 집단주의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하다. 국가의 위기 앞에는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가미가제(神風)의 자폭 공격이 이것을 웅변한다. 개개인은 유순하되 그것이 집단화되면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

이 힘을 믿고 일제는 지난 한 때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꿈꿨다.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동아시아를 보호한다며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했다. 지금까지 이 망상을 접지 못하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 시도도 그런 움직임 중의 하나다.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일본이다. 미국과 중국을 대하는 것을 보라. 살살대는 모습에서 일본의 간사한 일면을 볼 수 있다. 자기나라 이익을 위해서는 약소국들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여차하면 내침을 당하게 된다.

자, 이쯤에서 우리의 상황을 한 번 살펴보자. 지금은 친일을 할 때란다. 지금이 어느 땐데 반일이냐고 도리어 반문한다. 이번 경제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문재인 정부에 본때를 보여 달라고 한다. 일부지만 그 뻔뻔함이 우려스럽다.

이들의 주장은 일제시대 친일파를 빼닮았다. 이완용의 후예들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있다. 친일도 그 중 하나다. 일제 36년의 잔혹한 참상은 일일이 예거할 것 없다. 통한(痛恨)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피아(彼我)를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누구 말 맞다나 외계인이 침범해 와도 서로 헐뜯으며 외계인을 맞이하려는가. 일제 36년 통치 명분이 한민족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냉철하게 따져보자. 지금도 그때의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국내외의 상황이… . 강온의 양동 전략으로 일본과 대치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는 부류들이 있다. 현대판 친일의 전형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친일의 맥은 연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의 주류라고 확신하고 있다. 국내의 반대 정파보다는 일본을 더 좋아한다. 생각은 자유지만 행동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피아의 혼동, 그 결과는 파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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