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익 소장(환경과생명연구소)

대다수 부탄(Bhutan) 사람은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이들은 대체로 여유롭고 느긋해서 시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테면, 오전 10시에 만날 약속을 했다면 9시부터 12시까지가 모두 약속시간에 포함되는 식이다. 여기서는 정확한 시간과 상관없이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약속은 지켜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관습은 아주 오랫동안 몸에 밴 것이다. 사실 대부분이 먼 거리를 걸어 다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 가늠하기가 애당초 어렵기도 할 것이다.

이들에게 시간이란 한 방향으로 곧게 뻗은 일직선이 아니라 돌고 돌며 순환하는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순환을 되풀이하는 계절의 리듬에 따라 살아간다. 본디 농사 자체가 자연이 허락하는 조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이들 대다수는 불교를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환생, 곧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고, 그렇게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인생이다. 이들에게 시간은 양적인 게 아니라 질적인 것이다.

이런 부탄에선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나 생일잔치, 장례식 같은 모임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침묵의 시간이 생길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상황을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들은 침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대화를 나눈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이 불교를 믿는데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라서 생기는 재밌는 일도 있다. 언젠가 불경(佛經)을 갉아먹는 벌레로 골치를 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부탄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마도 우리 같으면 아무런 고민 없이 당장 벌레 없애는 약을 뿌려 댔으리라. 

하지만 이들에게 불경은 거룩한 것이므로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생명체는 숭고하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하찮은 해충이라 해도 마구 약을 뿌려 죽이는 일은 좀체 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이들은 벌레가 늘어나는 걸 막는 약초요법을 쓰기로 했다. 벌레를 쫓아내기는 하되 죽이지는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종교와 자연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인지 부탄 사람들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측면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할수록, 물건을 덜 소유할수록, 시계에 덜 의존할수록 정신적 에너지가 더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이에 견주면 세계 대다수 사람은 이들이 귀하게 여기는 정신적 능력, 예컨대 육감과 직관, 생태적 감수성, 통찰력 같은 걸 많이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살아 있는 현재 세상에서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피하고 멀리해야 할 두렵고 나쁜 것도 아니다. 이들에게 죽음이란 자연적인 흐름이고, 긍정적인 단계이며, 다음 생을 위해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그래서 부탄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명상에 들어간다고 한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명상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남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부탄 노인들이 다른 문화권 노인들보다 더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오래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이기에 이들은 사소한 것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다.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거의 없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염려하고 있음을 염려하라. 변화란 끝없는 것이고,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너 자신의 정원을 열심히 가꾸어라.” 

우리 대부분은 더 많은 돈, 더 큰 집과 자동차, 더 강한 권력과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애면글면 안달복달하며 산다. 행복도 그렇게 얻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이에 견주어 부탄 사람들은 버리고 포기하는 것, 물 흐르듯 내버려두는 것이 행복과 더 가깝다고 여긴다.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이란 끝없는 훈련과 연습의 열매인지도 모른다. 특히 감사하는 법, 비우는 법, 집중하는 법, 웃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최근 들어 부탄에도 변화와 개방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자본주의의 촉수가 이들 삶의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많은 부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그래왔던 것처럼 가파른 산기슭이나 깊은 골짜기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이들 옆에는 예나 지금이나 강물이 천천히, 그리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부탄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부탄을 품고 있는 티베트 지역에는 이런 속담도 전해 내려온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부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나라를 괜히 미화하거나 신비화하자는 뜻이 아니다. 이들을 그대로 본받고 따르자는 뜻도 아니다. 우리와 부탄은 처한 조건이나 환경, 역사와 문화, 사회 풍토 등 모든 면에서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다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만은 하지 않을까.

실제로, 부탄은 대다수 나라들과는 달리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높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로 삼고 있다. ‘생산’이나 ‘경제성장’이 아닌 ‘행복’을 나라 발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잣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 환경보호와 생태계 보전, 문화의 보전과 진흥 등을 중요한 정책 전략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탄이 추진하고 있는 독특한 ‘행복 정책’은 오늘날 단순한 호기심 차원을 넘어 많은 세계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과 주목을 모으고 있다.

장성익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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