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요즘 제1야당을 보고 있노라면 가관도 아니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한다. 염치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일컫는다.

자유한국당 당 대표 선거일이 오는 2월 27일로 잡혀있다. 출사표를 던진 면면을 보니 그야말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그 중 자숙해야 마땅할 사람들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겠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자그마치 10 여명이나 된다. 남의 집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진 않다. 허나 관전하는 재미만큼은 제법 쏠쏠하다. 당내 단합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외 선전용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 싸움이 치열하다.

10 여 명의 후보 중 내가 관심 두고 보는 이는 황교안이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때 내시와 같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박근혜의 탄핵에 황의 책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 정권 하에서 그가 법무장관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국무총리가 되고 나서 국민 여론을 제대로 읽고 국정에 반영하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했다면 박근혜가 탄핵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요즘 황이 정치판에 들어와 나부대는 것을 보면서 박근혜의 탄핵을 그도 은근히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망측한 마음까지 든다. 탄핵되고 비록 '권한대행'이란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황이 그 자리를 반 년이나 누렸다.

박근혜 탄핵이 아니었다면 공안검사 출신인 그가 제1야당의 대표를 넘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황이 대권까지 꿈꾸고 있다는 말을 한다. 여론은 돌출상황에 요동치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지 두고 볼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법무부장관으로 또 국무총리로 대통령을 보좌한 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의 빗나간 충성심으로 인해 국민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측면이 적지 않다.

몇 개 예로 들어보자. 박근혜 정권 초기 국정원 댓글 사건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를 들춰내어 찍어내기 한 것도 당시 법무부장관 황교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을 그는 사건으로 만들어 성사시킨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 권력을 이용해 국민이 선택한 정당을 해산하고, 국회의원을 구속시킨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그 당 소속 국회의원 이석기를 구속한 것은 공안 검사 출신인 황의 머리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아이디어였다.

통합진보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동의하지 않지만 권력의 힘으로 국민의 선택에 의해 정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당을 없애고, 국회의원을 구속시킨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이 일에 황교완이 앞장서고 양승태가 밀어줬다.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치뤄질 당 대표 선거에 출마 예정인 사람들(사진=Everynews)

정당의 대표로 출마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혹시 황이 자유한국당의 대표가 되고, 공안몰이식으로 그 당을 운영하려 할 때 또 다시 암흑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유신 때 박정희의 생각에 반(反)하면 모두 좌경용공으로 몰았듯이 말이다.

그가 자유한국당 당 대표 출사표를 던지면서 한 말에서 섬뜩함과 동시에 굳은 철면피 얼굴이 교차한다. 지금의 문재인 정권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공안 검사들에게는 사람이 모두 간첩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붉은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인다. 이런 사람이 정당 대표가 되고 나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시국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이다. 독일의 나찌당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와 같이. 아니 멀리서 찾을 것 없다. 유신독재 때 우리도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황교안에게서 그런 기미가 느껴진다.

이 나라의 민주화 세력들을 '무덤에 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고도 한다. 과연 황교안다운 말이다. 붉은 안경을 끼고 양지만 좇아다닌 그에게는 이 땅의 민주화 운동 세력이 종북좌빨 주체사상 심취 세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무덤에 가 있으면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녹록치 않다.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사고(思考)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 때까지만 통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감옥에 가 있는 박근혜를 애써 끌어내어 당 대표 선거운동에 마케팅하는 것도 박과의 근친성 때문일 것이다. 황교안의 난 데 없는 등장으로 자유한국댱이 도로친박당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런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과거의 잘못을 석고대죄(席藁待罪)하고 근신해야 마땅하다. 무덤에 가 있어야 할 사람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아니라 공안검사로 많은 사람을 망가뜨린 황과 같은 사람들이다.

좀 다른 말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정체를 민주주의 그것도 성숙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만에 말씀이다. 외형상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용적으로는 해방 직후 혼란기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진영논리에 갖혀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이 그것을 말해 준다.

정당의 존재 의의가 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야는 잘 할 때 밀어주고 잘못할 때 지적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를 맞은 자유한국당에 하고 싶은 말은 멀리 보고 당 대표를 뽑으라는 것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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