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2004년이었다. 불혹(不惑)이 채 되지 않은 미국의 한 지성인이 책 한 권을 출판했다. 그 책 제목이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원제 What's The Matter With Kansas?)이다. 적지 않은 부피의 책에서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그 이유를 천착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국은 2당 체제의 국가다. 부자와 정책적으로 근친성이 있는 공화당과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 서민과 가까운 민주당이 두 당의 주인공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에 해당하는 캔자스 주가 선거 때마다 부자 정당 공화당에 몰표를 주는 일이 반복된다.

저자 프랭크는 민중의 착란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즉 우매한 민중을 공화당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10만 택시 노동자들이 여의도에 모여 '불법 카풀앱 근절 제3차 택시생존권사수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택시 기사들이 한 장소에 운집해서 집회하는 모습을 보고 왜 갑자기 프랭크의 이 책이 떠올랐을까.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다. 그 이익이 물질일 수도 있고 정신적 가치일 수도 있다. 여기에 육체적 건강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이들의 총화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

10만 택시 노동자들이 여의도에 모여 카카오 카풀을 반대한 것은 경제적 득실과 관련된다. 그게 시행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택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벼랑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떨어져 죽으라는 것과 진배없다고 하소연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생존권 투쟁에 속한다. 생존권 투쟁은 극단적 상황을 만들어내기 쉽다. 벌써 한 택시 노동자가 카카오 카풀을 막아달라며 분신해서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10만 명의 사람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에서 모인 10만 택시 노동자들이 여의도에 모여 카풀 반대 제3차 택시생존권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사진 = 굿모닝와이티엔)

내게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책이 떠오른 것은 다음과 같은 장면들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카풀‧택시 T/F 위원장 전현희 의원은 야유와 물병 세례를 받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은 운집한 택시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

아니라고 할 사람들이 없지 않겠지만 해방 후 우리의 정당사를 되돌아 볼 때, 자유한국당은 가진 계층과 가깝고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크가 미국의 양대 정당-공화‧민주당을 그런 관점에서 나누었듯이 말이다.

조직의 몇몇 지도부 인사들이 자유한국당 성향이어서 야유와 환호로 확연히 나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지만 여기서 몇 가지 짚고 넘어 갈 게 있다. 택시 노동자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카풀 반대인가 아니면 삶의 질 향상인가.

출퇴근 때 카풀 제도를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정말 택시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부에 요구할 것은 택시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시켜 달라고 외치는 것이 옳다. 누가 보든지 설득력이 있다.

그들은 정부에 대해 사납금 제도 폐지라든가 완전한 월급제 시행 등 획기적이고도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게 맞다. 그것보다 덜한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사자성어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것이 있다. 택시 노동자들이 이 꾀에 넘어가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집회에 등단해서 환호를 받은 나경원 대표는 박근혜 집권 때 카풀을 허용하는 ‘여객자동차법’ 통과에 찬성했던 사람이다.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노동자의 편인 양 문재인 정권에 맞서 끝까지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은 한 편의 희화(戱畵)다.

얼마 전 서울 강남에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다. 기차 시간에 쫓겨 택시를 타야 했다. 빈 택시들이 제법 눈에 띄었지만 바깥 차선이 아닌 안 차선으로 유유히 지나갔다. 장거리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라고 친구가 귀띔했다. 택시를 잡느라 한동안 고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2012년 5월 출판, 값 16,000원

서민은 서민의 지지를 받을 때 운동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지난 20일 택시 노동자들이 차를 멈추고 몇 시간 집회에 참석했을 때 자동차가 원활하게 소통되어 좋았다느니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더 빨리 갈 수 있었다는 등의 말은 택시 노동자들의 집회를 차갑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 카풀 제도와 같은 것은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우리 정부도 4차산업혁명 추진의 일환으로 이것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택시 노동자들의 활동 여건을 개선시키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 명분이 있어야 하고 목표가 정확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권하고 싶다.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일독을 권한다. 택시 노동자들이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서 있는 삶의 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모자이크해 줄 것이다.

발행인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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