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중 내가 제일 처음 알게 된 배우는 신성일과 김지미다. 어릴 때 엄마 치마 폭 잡고 본 영화에서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호감의 정도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를 오락가락 했지만 오랜 기간 신성일과는 배우와 팬의 관계를 유지해 온 셈이다.

신성일과 대화를 해 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6년 전쯤 된 것 같다. 고 김근태 형 조문을 갔을 때였다. 고인의 대인 관계가 광범위함을 알 수 있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조문에 줄을 이었다. 진보 인사로 분류되는 고인의 빈소에 보수 쪽 사람들도 적지 않게 발걸음을 했다.

2012년 1월 2일,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고 김근태 형 조문을 온 신성일. 의외의 조문이란 생각을 했다.

그 중 신성일의 조문은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근태-신성일은 걸어 온 길이 너무나 달랐다. 억지로 공통분모를 찾다보니 16대 국회의원을 함께 한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여당과 야당으로 소속 정당은 달리하면서 말이다. 그의 조문을 의아하게 생각한 이유다.

2012년이면 신성일이 고희(古稀)를 넘기고 그 중반에 와 있을 연치인데 백발의 머리를 제외하면 모든 게 젊은 차림으로 보였다.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고인과 어떤 관계였느냐고 물어 보았다. 신성일이 다소 수줍은 모습을 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김근태 의원은 제가 존경하던 정치인이었습니다. 같은 상임위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지요.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늘 마음 속에 두고 있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할 분들이 없지 않겠지만 조문을 꼭 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조문을 마친 그에게 식탁에 가서 음료수라도 한 잔 드시라고 권했지만 아니라면서 총총 걸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한국의 국민 배우이자 국회의원 출신 신성일이 그때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내가 신성일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저런 예를 표할 수 있었을까.

인간관계엔 따뜻함이 배어 있는 게 좋다. 정치도 그렇고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비록 사회 활동의 지향점이 다르고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이념과 진영이 다르다고 해도 휴머니즘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다름은 틀림으로 등치되고 그것은 바로 적대적 전선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은지.

온갖 가짜 뉴스를 동원해 반대 진영 발목 잡기에 여념이 없다. 진선미(眞善美)의 보편적 가치조차도 진영 논리에 종속되고 만다. 지금 당장은 재미있고 또 가끔 통쾌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땐 무거운 암운(暗雲)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생동감이 사라지고 있다.

고 신성일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고인의 영결식은 11월 6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며, 오전 11시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글 사진 / 연합뉴스)..

신성일이 오늘(11월 4일) 타계했다는 소식이다. 그를 영화배우로만 보아왔다. 여기엔 솔직히 '딴따라'라는 비하의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로부터 삶의 여유를 생각해 낸 것은 왜인가. 삶의 양태가 달랐고 정치적 지향점도 같지 않았으며 소속 정당도 달랐던 한 정치인(김근태)의 죽음 앞에서 그가 취한 행동 때문이다.

일행도 없이 혼자, 마음 속 깊이 존경심을 품고 있던 정치인의 주검 앞에 머리를 숙인 그의 모습은 각박한 세상에 보여주는 한 점 로맨틱한 여유가 아니었을까. 82세면 이른 죽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의 인간적 넉넉함 때문이다. 일세를 풍미한 강신영, 강신성일 아니, 배우 신성일의 천국 안식을 빈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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