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 지식인 320인 선언? 전혀 공감이 안 된다.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1980년대 초로 기억된다. 대학생들이 책 한 권을 관심 갖고 읽었다.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비판한 책이었다. 한완상이 쓴 「지식인과 허위의식」이란 책이 그것이다. 지금도 출판 판매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식인의 문턱에 진입하려는 대학생들이 책 내용에 공감하며 열심히 읽은 것이 아이러니다. 미래의 자신들을 비판한 책에 열광했으니 말이다. 아마 타산지석(他山之石)의 마음이 없지 않았으리라. 이 책은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판금을 당했다.

한완상은 이 책에서, 배운 사람들을 지식인과 지성인으로 나눈다. 지식인은 배운 것을 자신을 위해 쓰는 사람이고 지성인은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식인은 기술자 수준에 머물기 쉽다. 이른바 지식 기능인이다.

불의에 편에 서서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즐기고, 권력에 붙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부르기를 좋아한다. 다수의 민중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기 보신(保身)에 연연한다. ‘지식인’을 부정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지식인의 역사에서 얻은 결과다.

지성인은 많지 않다. 지식인으로써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지성인의 범주에 넣는다. 자신의 유익만이 아니라 늘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 길이 무언가를 고민한다. 지성인은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안다. 노추(老醜)를 극히 혐오한다.

역사의 발전법칙을 믿고 그것에 하나의 밀알이 되려고 한다. 불의한 권력이 손짓해도 단호히 거절한다. 이렇다 보니 사물과 현상을 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비판적이 된다. 비판안(批判眼)을 갖지 않은 이를 지성인으로 보기 어렵다.

오늘(10월 26일) 몇몇 사람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소식이다. 얼굴들이 그렇고 그런 그 동네 사람들이다. 보수들도 꺼리는 극우 사람들. 기자회견 이름은 이렇다. "문재인 퇴진과 국가수호를 위한 320인 지식인 선언" 꽤 긴 명칭이다. 바라는 게 그만큼 많았을까.

선언 서명자가 320명이고 준비위원이 13명이라고 하는데, 언론에 이름을 드러내기는 3명이 전부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이들은 신뢰를 이미 잃은 사람들이다. 이 회견이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김문수는 한 때 운동권이었다가 훼절한 사람이다. ‘훼절’이 사람을 얼마나 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김진태는 태극기부대 대변인격인 사람 아닌가. 지식 기능인의 대표라고 말해도 될 사람이다. 심재철의 카멜론적 이중 행보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100%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권은 없다. 정부는 국민 다수를 위해 일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에 근거해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는 것이라든지 특히 극우세력이 만들어 낸 가짜 뉴스에 근거해 정권 발목을 잡으려는 것은 집단 선언의 가치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다.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없는 사실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서푼어치 기득권을 지키려고 악담을 쏟아내는 그들에게 언제까지 인내심을 가져야 하나. 통일을 반대하며 전쟁의 공포심을 확대 재생산하는 그들이 노리는 게 뭘까. 미래 세계의 대안은 평화밖에 없다.

지식인 320인 선언, 그들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사랑과 화해는 없고 증오와 시기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객관은 없고 감정과 주관이 충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320인 지식인 선언? 이들이 지성인까지는 아닐지라도 과연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