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백일혜 님은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 주 프리몬트 시에 거주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의 모습.

결혼생활이 꽤 오래됐지만 나는 남편의 양복 입은 모습을 보면 아직도 소녀처럼 가슴이 설렌다. 남편은 목사이기에 매주일 양복을 입어야 하고 주중에도 경조사나 교인을 만날 때면 대개 정장차림이 된다.

사실 남편의 외모가 출중한 것은 아니다. 7080시대 기준으로 남편은 키와 체구가 조금은 왜소한 편이며,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얼굴도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남편과 나는 지금 각방을 사용한지 5년이 되어간다. 내가 중증치매환자인 친정 엄마 곁을 지켜야 하기에 본의 아닌 분방 생활을 하고 있다. 각방 사용은 부부사이 불화의 결과물인데 우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이리 지낸다.

헌데 아침이면 굿모닝이란 멘트와 함께 진한 향 커피를 들고 남편이 짠하고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을 향한 사랑지수가 고조되어 간다.

간혹 의견 대립으로 눈 마주치기를 꺼려하다가도, 다음날 양복입고 강대상에서 부드러운 톤으로 기도하고 설교하는 남편 모습을 바라보면 “이사람 어제 내가 미워한 남편 맞아? 오늘은 멋지다”라는 독백이 흘러나오며 미움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어느새 사랑의 접착제가 움트며 그의 심장을 내 가슴에 끌어안는다.

데이트 시절 찻집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보면 찻잔 밑에 어느새 깔아 놓았는지 하얀 냅킨이 있고, 그 냅킨에는 남편의 자작시 구절이 하나 가득이다.

어느 땐 밤새며 나를 주인공으로 쓴 조각소설이라면서 읽어보라고 원고뭉치를 불쑥 내밀기도 하던 남편이다. 쭉쭉 뻗어 내린 필체는 내 눈에 왜 그리 멋있게 보였던지... .

지금 생각해 보면 멀리 미국으로 딸을 보내기 싫어 결혼을 반대하신 부모님 뜻을 어기고 결혼을 덜커덕 해버릴 정도의 강력한 사랑의 접착제 1위는, 실제적인 결혼생활과 거의 상관없는 남편의 글쓰기였다. 지금은 2위가 되어버렸지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꽃과 함께 좀 오글거리지만 마음 담긴 글로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해준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지인의 장례식 때문에 멋진 외식은 접어야 했다. 헌데 서운함이 없었다. 남편님께서 난생 처음으로 장미 60송이를 듬뿍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장미다발과 남편의 검은 양복은 요즘 들어 내 마음 속에 가장 강력하게 살아난 사랑의 접착제였다.

여태껏 말로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이지만 건강하게 내 옆에서 양복 입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해서 남은 날들도 뗄 수 없는 접착제로 우리 사랑을 꼭꼭 붙여 가며 살아가고 싶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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