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이 우러나는 우리지역 모범업소(16) - 본향텃밭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운위하는 시대에 색 바랜 구호이기 쉽다. 그러나 이 정신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가 있다.

시대정신의 변화로 농사가 홀대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의 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흔하다고 해서 박대하는 건 이성의 동물인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농산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지천인 물과 공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당장 쌀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잠깐의 생존도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농사를 지어 주위를 기쁘게 하는 농군이 있다는 게 여간 자랑스럽지 않다. 김천 근교 여러 곳에서 농사를 짓는 이상혁 장로 부부가 그런 사람이다.

농사는 육체적 중노동에 해당한다. 억지로 매달리면 고통스럽기 한이 없다. 그러나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일은 기쁠 수가 있다. 그들은 농사를 즐겁게 짓는다.

과학 만능의 시대이다. 그러나 '과학 영농'은 양장 치마에 무명 고쟁이를 걸친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과학 영농까지는 아니더라도 지혜를 더한 농사를 그들은 짓고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품종을 다양화해서 수확의 때를 분산시킴으로써 노동 활용도를 높인다든지 가장 적당한 때에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해서 맛을 최대화시키는 것 등.

새벽에 시작해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농사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농부 철학자 윤구병처럼 분명한 세계관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말이 있다. '자기 밭에 물 대기'란 뜻이다. 천수답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에 생겼을 법한 이 단어에는 농부들의 이기주의가 일정부분 반영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밭은 어떻게 되든 내 밭에만 물을 끌고 오려는... . 이게 농부들의 일반적인 마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고래(古來)로 농사일은 대동의 세계를 지향했다.

이상혁 부부는 이 정신을 계승해서 줄기차게 고집하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다 같이 잘 사는 삶을 꿈꾼다. 그가 친환경 농사를 주장하고 또 자작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아까워하지 않고 알려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 몰리는 농사를 지켜내는 일은 농민들의 단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김천농민회 사무국장을 거쳐 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웃 사랑도 남다르다. 팔다 남는 농산물은 아끼지 않고 소외 받는 이웃에 나눠준다. 장애인들, 독거노인들 그리고 어려운 작은 교회들이 수혜의 대상들이다.

이들이 사람 만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 3,4년 되었다. 직지사 가는 길목, 대항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농장 곁에 노점을 차려 옥수수 등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 옥수수를 쪄 즉석에서 제공하는 것은 인기가 꽤 높았다. 포장을 친 임시 상점(?)엔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얼마 전 가게를 옮겼다. 직지농협 근처 농산물 집하장 옆 널찍한 공간을 빌려 이사를 온 것이다. 이른바 확장 이전이다. 김천포도회가 쓰던 사무실이니 별 고침 없이 써도 무리가 없다.

여기서 포도 자두 복숭아 등을 위탁 받아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넘겨준다. 그러나 이곳의 주 상품은 즉석에서 찐 옥수수이다. 맛이 뛰어나 단골 고객이 꽤 된다.

누구나 똑 같은 질문을 한다. 이런 맛을 내는 비결이 뭐냐고. 비결이 있다. 당일 따서 살짝 소금 간을 한 다음 당일 압력밥솥으로 정확하게 12분의 시간을 지켜 쪄내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농에 상호를 달았다. '본향텃밭', 한자(本鄕)와 순 우리말(텃밭)의 조합이다. 본향은 고향과 같은 말이다. 우리의 옛 고향은 모두 농촌 아니었나.

그들이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본향'은 우리가 돌아갈 천국으로도 읽힐 수 있다. 여기에 '텃밭'을 결합하니 나도 모르게 순수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와 있는 느낌이다.

바른 농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 등 외국까지 다녀온다. 사람을 위한 농업 관련 책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사서 읽는다. 그가 갖고 있는 농업 정보는 관련 대학 교수 못지않다.

10년 후의 농업을 가늠하기 힘들다. FTA로 우리의 농업이 서서히 멍들어 간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취재부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