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정치평론가)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큐슈의 시마즈(島津) 일가를 타도하고, 일본의 모든 무력을 자신의 휘하로 집결시켰다. 1590년 종6품 정읍현감이던 이순신의 인사발령은 극심한 파행을 보였다. 병마첨절제사, 수군첨절제사, 진도군수, 다시 수군첨절제사, 1년 뒤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기까지 사간원은 번번이 이순신의 인사발령을 취소시켰다. 조정 대신들 간의 권력투쟁은 극에 달했다.

1589년 기축옥사. 역모의 군사를 기른다던 "길삼봉"을 찾기 위해 조정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랴(何事非君)”던 정여립은 길삼봉으로 지목되어 쫓기던 중 자살했다.

다음으로 "길삼봉"으로 지목된 사람은 최영경이었다. 임금이 불러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던, 최영경은 의금부 형틀에서 그 몸이 부서졌다. 그는 감옥에서 단정히 앉아, 바를 정(正)자를 썼다고 한다. 면회 온 가족들에게 "너희가 이 글자를 아느냐?" 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 사화로 1,000여명의 선비와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최영경은 당대의 저명한 성리학자(性理學者)로서, 학문이란 구설(口舌)과 문장(文章)에서 떠나 실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서울은 함락되었고, 임금은 서울을 버리고 의주로 향했다.

최송설당은 수우당 최영경의 후손이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증조부 최봉관이 옥사하고 그의 아들 조부 최상문 등 4형제가 전라도 고부(古阜)로 유배되면서, 가문은 다시금 몰락했다.

송설당은 서당 훈장인 부친에게 글을 배워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으며, 이후 몰락한 가문의 복권을 위해 한양에 입성한 뒤 고종이 총애하는 엄비의 신임을 받아 왕세자였던 영친왕의 보모가 되어 입궁하였다. 이후 엄비와 고종에 대한 지극한 충성으로 신임을 얻은 그는 1901년 고종에게 조상의 신원(伸寃)을 상소하여 그해 11월 몰락한 가문의 복권을 이루었다.

출궁한 송설당은 가문의 재건을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였고, 그 가운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건학이념은 "길이 사학을 경영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永爲私學 涵養民族精神)"였다.

나라가 저물어가던 시대의 여성으로써, 가문의 재건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그의 마음가짐은 <최송설당문집>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오히려 근대 여류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영경과 최봉관의 선비정신은 최송설당으로 그대로 이어진 듯하다.

왕을 키우던 마음으로 설립한 학교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공부를 배운 것은 학생들에게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김천은, 선거가 코앞이라 "송설"이라는 호칭이 너무 남발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막바지로 가면서 더욱 과열되는 선거를 보며, 임금 앞에서라도 할 말은 하던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의 말씀을 빌리고 싶다.

'바를 정(正)', 그대들은 이 글자를 아는가?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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