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웬일로 회담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가 했다. 기쁘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트럼프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장사꾼이다. 좋게 말해 베테랑 사업가다. 모험이 그의 주특기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던지고 보는 거다.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경우엔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나왔을 때 많은 미국 사람들이 조소(嘲笑)했다. 택도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한 번 던져 보는 주사위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안 되도 득 되는 장사였다. 그의 얼굴을 미국 전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미국뿐 아니라 돈 안 들이고 세계에 알리는 길이다.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미국 아니, 전 세계가 경악했다.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의 나라 미국이 그렇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막말 프레이드도 통할 때가 있구나. 자극적 언사도 선거운동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구나!

그의 당선은 혈맹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 미칠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었다. 태극기 집회장에 나가는 극우세력들은 미국의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영원한 우방 미국을 환호하며 나라를 맡기려 한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일 뿐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해관계가 맞설 때 언제나 돌아 설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되어 있던 북미정상회담을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깼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제 관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무례다. 사업을 하면서 써 먹던 방식이 미 대통령 선거까지는 통했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국제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통한다고 생각했을까. 북미 회담 취소를 두고 국제 사회의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좀 비속한 속담처럼, 황당해 하기는 북한만한 곳이 없겠다. 그들의 장기(長技)로 트럼프가 선수를 치고 나왔으니 말이다. 양비론의 입장에서 좀 벗어나서 생각해 보자. 북미정상회담은 북한과 미국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전체의 명운이 걸린 문제요, 세계가 관계되어 있는 문제다.

핵무기의 가공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의 종말도 가져올 수 있다. 단추 하나로 세계를 분토(墳土)로 만들 수 있다. 이런 것을 방지하자는 중차대하고도 심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6.12 북미정상회담이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문제를,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깬  것은 잘못한 선택이다.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북한이 세계 각국 기자들을 참관(參觀)케 한 가운데 핵 폐기를 위한 가시적 조치, 즉 풍계리에 있는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난 직후 트럼프의 6.12 싱가포로 회담 취소가 전격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계관과 최선희의 자극적인 성명서 발표는 없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들 특유의 기(氣) 싸움의 일종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줄 것 내 주고 받을 것 준비하고 있던 중에 버림을 당한 격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다음 수순이 무엇일까 걱정의 마음이 몰려온다. 조금 전 발표된 북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갈 용의가 있다. 회담을 재 고려하겠다”며 한 풀 꺾인 개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변화된 모습에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으로부터 1백 % 동의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북한을 보는 미국 조야(朝野)의 시각도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결정한 것을 발목 잡는 세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자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노력도 보이지 않고 회의를 파기하는 것은 트럼프의 횡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한 언론사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북미정상회담 파기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것이 격에 어울리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다. 그런 측면에서 북미에 주문한다. 한 발씩 양보하고 양국 정상이 약속대로 만나 대화하라. 만나면 길이 보일 것이다. 인류 평화를 위한 길이….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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