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 때문에 편의점을 자주 찾다 보니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단골 편의점엔 단골 주인은 없다. 그냥 계산 잘하는 숙련공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인간은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옛것에 향수를 갖는다. 그래서 오래된 것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간직한다는 말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물건에 묻어 있는 정서를 음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이성의 화신(Paragon)이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스스로 경험을 돌아보면 수긍이 간다. 정서가 더 우선이라는 것을.

서두가 참으로 길었다. 동네 술집을 소개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상호도 이름 그대로 ‘동네술집’이다. 삐까번쩍한 간판도, 실내장식도 없다. 그냥 조선시대 주막이라고 생각하면 딱(?)이다.

동네 술집 하나를 소개하는데 뭐 이렇게 대단한 사설이 필요하겠냐 하겠지만 가보면 그렇지 않다. 주인장도 젊은 여자다. 그렇다고 아주 젊지도 않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술과 안주가 있지만 단골손님은 안줏거리를 싸 들고 오기도 한다. 참으로 요상한 술집이다. 벽에는 온갖 낙서와 다녀간 술꾼들(?)의 명함도 덕지덕지 붙어 있다. 명함은 자기의 얼굴인데 동네 술집에 자랑스럽게(?) 부쳐 놓았다.

50m 거리에 야산이 보이기는 하지만 단독과 연립주택뿐만 아니라 아파트가 있는 평범한 도시의 한 귀퉁이다(경북 구미시 봉곡로 23길 18. 앞에는 보영 캐슬 아파트가, 옆에는 영남네오빌시티 1단지가 보인다.)

그런 곳에 편안한 술집이 하나 있다. 주인장이 손님을 맞는 게 아니라 반가운 벗을 맞는 모습이다. 마치 퇴근길에 하루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약속이나 한 듯 이웃이 찾아오는 것 같다.

몇 평 되지 않는 동네 술집이 뭐 이렇게 대단할까? 술집의 한자 표기는 酒店(주점)이다. 원래 주점은 먼 길 가는 나그네가 쉬어가는 곳(숙식하는 곳)이며, 휴게실이다. 이곳 ‘동네술집’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 알코올을 마시는 공간이 아닌 듯하다.

중국은 호텔(hotel)을 大酒店(대주점)으로 표시한다. 우리말로 하면 큰 술집이라는 뜻이다. 호텔은 숙박과 식사 그리고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호텔 즉 대주점(大酒店)은 고급스럽게 영업을 하지만 ‘동내 술집’은 정겹게 사람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취기로 흥이 동하면 장소를 옮겨 2차를 가는데 ‘동네술집’은 장소를 옮기는 게 아니라 옆 테이블로 옮겨 앉는다. 또 다른 벗이 와있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정겨움만큼은 대주점(호텔)보다 훨씬 낫다.

비싼 돈을 내고 대접받는 호텔이 아니라 호텔보다 더한 정을 나누는 곳이다. 마치 무더운 여름 날 마을 앞 미루나무 아래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곳이다.

주인장 말씀에 의하면 술은 최고의 음식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 없이 제사상과 종교행사에 반드시 술(포도주)을 바치는데, 그 이유인즉 술은 모든 음식을 대표 할 뿐만 아니라 가장 귀한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음식을 추상화한 것이 술이라고 한다.

주인장의 술 예찬을 듣고 보니 “한 잔술에 친구가 오고 두 잔 술에 신선이 된다”는 말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이런 생각은 취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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