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갑질’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다. 계약서상의 ‘갑을관계(甲乙關係)’에서 생기지 않았나 싶다. 갑은 힘 있는 계약자, 을은 지위가 낮은 계약자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갑질’이라는 건 갖고 있는 힘으로 약한 상대를 짓누르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 힘(power)은 돈일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 또는 학벌일 수도 있다. 이런 힘의 총칭을 권력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 교만의 원천이다.

예전 같으면 참았을 것이다. 인격적 모멸감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보다 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로 참고 굴종(屈從)했다. 권력의 위세 앞에 벌벌 떠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양극화의 폐단이 지적되긴 하지만 경제적 상태가 옛날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여기에 의식의 전환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도 바뀌어야 정상이다.

아직도 20세기 초중반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다. 돈과 권력 앞에 사람들이 꼼짝 못한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말 한 마디에 도지사도 날아가고 쌓은 명예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시대이다.

한 재벌 그룹의 딸이 갑질 행패를 부렸다 해서 사회가 시끄럽다. 광고를 맡긴 회사 직원에게 화를 내며 물 컵을 던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물컵 투척’ 사건이다. 재벌의 딸이자 광고주의 전형적 갑질이다.

그 재벌 회사는 4 년 전 비행기 회항 사건으로 유명세를 탔었다. 이번 물 컵 사건의 주인공 언니이자 재벌 총수의 큰딸이, 묻는 말에 사무장이 대답을 못했다고 해서 비행기를 돌려 내리게 했다. 한동안 사회를 분노케 한 사건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갑질도 유전되는 것 같다. 4년을 간격으로 재벌 총수의 두 딸이 번갈아 갑질 행패를 부린 것에서도 그런 면이 보인다. 아니, 가정교육의 빈핍(貧乏)이라고 해야 할까.

딸들의 엄마가 하루를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을 딸들에게 온전한 품성을 기대하는 게 애당초 무리인지 모른다. 황금성 안의 삶과 행복이 꼭 비례하는 게 아니다.

존재가 형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멀쩡하던 사람이 힘을 가지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돈과 지위는 사람을 일탈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심리학자 융(C. G. Jung)은 대극 이론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몇 년  전이다. 우리 지역 모 정치인도 갑질을 했다 해서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정치인의 부인이 대화 중 화를 내며 동석한 비서를 고속도로에서 내리게 하고 차를 그대로 달렸다는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교만에 대해 주의하라는  것이다. 재벌가의 갑질만이 아니다. 소위 상층에 속한다는 가진 자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새겨 들어야 할 경고의 말씀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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