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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와 풀기(2)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
편집부 | 승인 2018.04.14 12:32
한반도 문제 전문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 : 그르디우스의 매듭 끊기와 풀기'는 장문의 한반도 비핵과 평화체제를 위한 보고서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2. 예상되는 난제들

일단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금까지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해왔고 앞으로도 장애 요인이 될 쟁점들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이 말해주듯, 사소해 보이는 문제로 인해 협상 국면은 언제든 대결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 이른바 북핵 25년사가 보여주는 핵심적인 교훈 가운데 하나이다. 개별적 사안에 대한 합의 실패나 합의 사항 이행 실패, 그리고 합의 사항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따른 갈등은 ‘역류 현상’을 동반하면서 협상 자체를 총체적으로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여러 현안들과 쟁점들이 개별적으로도 해결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하나의 문제가 꼬이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전체 협상 구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고르디우스의 매듭’ 가운데 끊을 것은 끊고 풀 것은 풀면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사전에 짚어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직접적인 협상 의제는 아니더라도 협상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돌출 변수와 악재도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양해의 뜻과 함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유예키로 한 것은 긍정적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회복과 우발적 군사 충돌 방지 노력 역시 돌출 악재를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사안들은 반드시 미리 점검하고 대비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1) CVID와 비핵화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며 비핵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한미 양국이 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6월 한미정상회담 때부터 ‘CVID’를 북핵 해결의 원칙으로 삼아왔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CVID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양국이 CVID를 고수하면 합의 자체에도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망은 CVID의 역사에 근거한다. 이 표현은 아들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을 주도했던 네오콘이 2003년에 고안한 것이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2003년 4월에 열린 북미중 3자 회담 및 그 해 8월부터 시작된 6자회담에서 북한에 CVID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었다. CVID는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표현”이고, 미국의 의도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평화적 핵 활동까지 금지시키려고 하는 데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3년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이전까지 CVID를 둘러싼 북미간의 거친 말싸움으로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치열한 공방 끝에 9.11 공동성명에는 완전한불가역적인이 빠졌고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만 담기게 되었다. 그 이후 CVID가 되살아난 시기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부터다. 이후 한미 양국, 혹은 한미일 3자회담에서 CVID가 북핵 해결의 원칙이라고 밝혔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CVID를 거부하고 결국 6자도 이에 동의했었다. 더구나 북한은 그 이후 6차례의 핵실험과 수많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CVID에 동의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이라고 밝힌 “조선반도 비핵화”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6년 7월 6일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현재까지 핵문제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입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명에선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라며 5가지 요구 사항을 내놨다. 첫째, “남조선에 끌어들여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 둘째,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폐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아야 한다.” 셋째,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한다.” 넷째,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여야 한다.” 다섯째,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 김정은이 현재에도 위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상기한 내용은 김정은 시대 들어 새롭게 나온 것이 아니라 선대때부터 줄곧 나온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 핵문제 해법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CVID’와 ‘조선반도 비핵화’가 거칠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2) 대북 안전보장과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상응조치는 대북 안전보장 제공에 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은 2018년 3월 초에 남한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3월 하순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미가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한다면”을 비핵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반해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4월 초순 현재까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안보적 상응조치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북미 양측을 중재하고 조율해야 하는 책무를 맡게 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비핵화의 병행 조치로 염두에 두고 있다.

대북 안전보장과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와 관련해 예상되는 논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북미관계 정상화는 비교적 명확한 반면에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이들 대북 안전보장 조치들과 관계정상화를 비핵화와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셋째, 북한의 핵포기는 대북 안전보장 제공과 관계정상화의 충분조건인지, 아니면 미사일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문제 등 다른 문제들의 해결도 대북 안전보장 및 관계정상화와 연계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넷째, 북한의 핵포기는 물리적이면서도 돌이키기 어려운 조치인 반면에, 대북 안전보장 조치들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고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대북 안전보장(CVIG)”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실질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섯째, 평화협정 체결이 북한의 요구를 상당 부분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이냐는 점이다. 일곱째, 김정은이 “한반도 정세가 안정으로 진입하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한미군사훈련의 문제이다. 끝으로, 북한의 핵포기시 더욱 격차가 벌어질 북한과 한미동맹 사이의 군사력 불균형의 문제이다.

(3) 한반도 평화협정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상기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대북 안전보장의 유력한 방안이라면, 한미 양국의 결단에 따라 대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일단 북한은 김정은 체제 이후에도 평화협정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 철회”의 핵심적인 관건으로 여겨왔다. 북한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직후인 2010년 1월 외무성 성명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조미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조선반도 비핵화를 빠른 속도로 적극 추동하게 될 것”이라며, 평화협정 체결을 비핵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또한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7월 25일 외무성 대변인은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핵억제력을 먼저 내놓을수 없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조건 없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2018년 3월 초에 김정은을 면담한 서훈 국정원장이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평화체제 문제 등에 대해 금년 안에 큰 가닥을 잡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또한 김정은은 4월 1일 ‘봄이 온다’는 남측 예술단의 평양공연을 관람한 뒤, “‘봄이 온다’를 잘했으니까 가을에는 남측에서 ‘가을이 왔다’를 하자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김정은은 2018년 이내에,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 70주년이 되는 99일 이전에 비핵화 합의 및 평화협정 체결이나 이를 향한 획기적인 진전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군사적 위협 해소 및 체제 안전보장”을 위한 유력한 방식으로 간주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줄 것이라고 여긴다면, 커다란 난제를 풀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평화협정 체결은 군사적 위협 해소 및 체제 안전보장이 품고 있는 모호성과 추상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협정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선후 관계이다. 이전 미국 행정부들은 대체로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을 상정했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아직까지 제시한 바 없다. 반면 북한은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 완료 단계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선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핵심적인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비핵화의 획기적인 진전은 시급한 과제로 간주되는 반면에, 한반도 평화협정은 기존의 문법대로 추진할 경우 협상 개시에서부터 완료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때에는 평화협정의 사전 단계로 종전 선언이 검토되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동일한 것이라는 입장이었고, 노무현 정부 내에서도 혼선이 컸었다.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남북미 3자가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해소되고 있지만, 중국의 포함 여부는 미지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평화협정 체결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해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해소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4) 대북 제재

대북 제재 문제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대북 제재와 선제공격을 포함한 “최대의 압박”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주장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에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제재에 따른 고통이나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는 분석 못지않게 “핵무력 건설 완성” 선언에 따른 자신감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또한 2017년까지 제재가 효과가 없었다고 해놓고선 하루아침에 제재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무엇보다도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와 선제공격 위협이 최대치에 달했던 2017년에 북한이 이를 감수하면서 “핵무력 건설”을 향해 돌진했다는 사실과도 차이가 있다.

지난 25년간 북한의 기본 입장은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도 제재에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북 제재 강화를 북한의 태도 변화의 요인으로 여기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접근은 역효과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북한은 비핵화의 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철회”를 요구해왔고 제재를 대표적인 “적대시정책”의 사례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북한을 적대할 의도가 없다는 언명과 대북 제재 유지·강화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건은 비핵화 조치와 대북 제재의 유예·완화·해제를 어떻게 상호조율되는 방향으로 이뤄나갈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3월 10일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바 있다. 트럼프가 제재 완화나 해제 시점을 비핵화 완료 이전인 합의단계로 상정하고 있다면, 타협의 여지는 만들어질 수 있다.

(5) 핵 신고

북핵 폐기의 1차적인 선행 절차는 핵 신고이다. 그런데 핵 신고 대상을 놓고도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플루토늄 불일치 및 미신고 시설에 대한 사찰 문제로 전쟁위기까지 치달은 바 있다. 9.19 공동성명의 2단계 이행조치로 채택된 2007년 10.3 합의에서도 핵 신고를 둘러싸고 큰 마찰이 있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및 플루토늄으로 한정하려고 했었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 그러자 한미일 일각에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시리아로의 핵확산 전력 등이 빠졌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0.3 합의에 따른 신고 대상에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자 딕 체니 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에릭 에델만(Eric Edelman) 국방부 차관은 이를 강력히 문제삼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이전보다 훨씬 고도화·다양화되었다. 자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시설과 실험용 경수로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5-60개의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핵무기 운반수단으로 이용되는 탄도미사일의 종류도 다양화되었고, 증폭 핵분열탄이나 수소탄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핵탄두 연구 및 제조 시설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일각에선 북한이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건은 북한이 핵 신고 대상에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연구·제조 시설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로 모아진다. 10.3 합의의 전례와 “핵무력”을 최후의 보루로 간주하는 입장에 비춰볼 때, 북한은 핵 신고 대상도 나누어서 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6) 평화적 핵 이용: 경수로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북한의 핵 신고 대상과 폐기 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라늄 농축 시설과 실험용 경수로가 당면 현안이 될 것이다.

이전까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전면 부인했었던 북한은 2009년 5월 농축 프로그램의 착수를 선언했고 2010년 11월에는 이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당시에는 2천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한 상황이었지만 현재에는 그 규모가 2배로 늘어난 상태이다. 이들 모두를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용으로 이용할 경우 연간 100kg 안팎을 생산할 수 있다. 동시에 3-5%의 저농축 우라늄은 경수로의 핵 연료로 사용된다. 아울러 북한이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와 삼중수소 생산을 위해 IRT-2000을 가동하면서 이에 필요한 핵 연료로 농축 우라늄을 사용해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북한이 어느 용도로 사용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북한이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 이외에도 별도의 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핵 협상에서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였던 경수로 문제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네바 합의에선 2003년을 목표로 2기의 경수로를 제공키로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9.19 공동성명에서는 경수로 제공 문제를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했었는데,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었다. 한미 양국은 “북핵 폐기가 완료되고 북한이 NPT와 IAEA에 복귀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확보한 다음”이라고 주장했고, 북한은 “경수로 제공 이전에 핵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었다. 그런데 북한은 2009년에 자체적인 경수로 건설에 착수해 2018년 4월 현재에는 시험 가동에 들어갔거나 그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의 경수로 보유 목적이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 추출에 있는지, 전력 생산용에 있는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아마도 이미 공개된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과 실험용 경수로는 핵 신고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시설의 폐기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시설의 건설과 가동에는 상당한 비용과 자원이 투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평화적 핵 이용’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라늄 농축 시설은 대표적인 이중용도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경수로에서도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CVID를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은 폐기 대상에 이들 시설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설사 북한이 이에 동의하더라도 에너지 제공 등 보상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7) 검증

핵 신고에서부터 폐기 완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통하는 문제가 바로 검증이다. 과거 사례를 복기하더라도 검증은 합의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자 가장 큰 갈등 유발 요인이었다. 1990년 초반에는 미국이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 방안으로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겪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는 6자회담이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한미일이 3단계에서 다루기로 했던 검증 문제를 2단계로 가져온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단히 강도 높은 검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은 영변 이외의 지역에 미신고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에 비핵화 사찰은 북한 전역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단계적이면서도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2017년 6월 하순 워싱턴행 비행기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각 단계의 하나하나가 완벽히 검증돼야 한다”며 “서로 검증이 확실히 될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검증 대상과 방식, 그리고 시기를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북한은 과거에도 시료 채취와 같은 강도 높은 사찰에 대해서는 가택 수사라고 거부했고, 북한 전역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찰은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반발했었다. 또한 북한은 핵폐기의 핵심 대상인 핵무기와 핵물질에 대한 검증은 마지막 단계로 미루려고 할 것이다.

(8) 탄도미사일과 위성 발사체

탄도미사일은 대표적인 핵무기 운반수단이고, 위성 발사체는 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문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또한 2009년 이후 한반도 문제가 악순환을 거듭한 데에는 북한의 위성 발사와 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한 한미일의 강경 대응이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더구나 이후 북한은 ‘화성’ 계열의 지대지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북극성’으로 불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개발·생산해왔다. 아울러 위성 발사는 주권 국가의 정당한 권리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북한은 일단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명시적으로 위성 발사도 자제하겠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추후 접촉과 협상에서 위성 발사도 유예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위성 발사 권리를 계속 제약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일정 정도의 조건이 충족되면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폐기 대상에 북한의 탄도미사일도 포함시킬 것인지, 포함시킨다면 그 대상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모든 탄도미사일의 폐기에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미 협상에서 폐기 대상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한정할 경우 한국과 일본 일각에서 반발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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