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길(전 국회사무차장)

금년 초에 등장한 그리스의 좌파 정당 출신의 치프라스 총리의 구제 금융 재협상 논란으로 유로존의 위기가 다시 촉발되었다. 비록 그리스가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럽의 경제상황은 글로벌 경제 체제 하에서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유로존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유로존 경제 체제에 대한 지식과 유럽연합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비록 이 책이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책이지만 유럽통합에 대한 배경과 현재 운영체제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전체 내용파악이 어려운 듯하다. 번역자가 쉬운 경제용어를 선택하고 용어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도움을 주긴 하지만, 아무리 쉽게 번역하려고 하였더라도 번역문의 난해함이 따라온다.

이 책은 유로존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주요 구성요소, 기능적 결함, 맥락들을 짚어보고자 저자가 <유럽법률저널>에 실린 같은 제목의 논문을 기반으로 새로 정리한 것이다. 유로존과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와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유럽대륙 중심의’ 지식서이다. 유럽연합과 유럽통합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입장과 주장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작금에 제기되는 금융위기와 그 해법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냉철한 분석을 가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럽연합과 유로존의 위기에 대하여 여러 학자들의 주장과 이를 바라보는 시각차를 통해 분명한 ‘관전 포인트’를 제공해 준다 할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유럽연합이 이중의 덫에 빠져 있음을 말한다. 좀 더 철저하게 구조화된 정치 동맹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유럽연합 체제하에서의 시장이 지니는 결함이나 문제를 강력히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유럽연합 내 국가들 간에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체급이 다른 참여자들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채 설계되어 당초 유럽연합이 꿈꾸어 온 동맹체의 장미빛 전망에 완전히 부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첫 번째 덫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두 번째 덫으로 경제 통화 동맹에 머물러 있는 유럽연합은 정치적 대리인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구조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독일 지도자론의 타당성을 냉정하게 검토하여 이 또한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에 있음을 말한다. 결국 위기와 파멸의 상황으로 떠밀려 가는 형국임을 지적하고 있다. 유럽통합이라고 하는 것은 오랫동안 유럽의 역사적·문화적 유사성과 다양성을 배경으로 추진된 정치 프로젝트로서 민족이나 종교에 따른 정체성이 아니라 법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이다. 또한 유럽이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희생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대중적 기반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서구유럽이 공동으로 이끈 결과물이며 임무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클라우스 오페 지음, 신해경 옮김 <덫에 걸린 유럽>(아마존의나비, 2015년)

아울러 경제 번영이라는 풍요로운 수확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연합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원래의 유럽국가 체제로의 회귀는 어려울 뿐 아니라 연합 내 위상이나 역할을 보아 유럽연합의 지도자로서 독일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재고의 여지도 없다고 설파한다. 그래서 유럽연합 내 정치 세력과 지형에 의해 어정쩡한 상태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유로존 경제 체제가 트랩에 빠져있는 상황에 대한 진단이다.

이렇게 유럽연합이 갖고 있는 이중의 덫을 찾아내 분석한 뒤 저자는 미래에 대한 전망보다는 최소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올바른 사안들을 정책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의제화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올바른 의제를 찾아내서 논의하고, 대안 찾기의 테이블에 올려놓음으로서 유로존 위기가 가져오는 사회적 고통을 덜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국경과 사회적 분리를 넘어서는 재분배 정책에 관여하는 폭을 넓혀 가는 행보를 펼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번역자의 마지막 말에서 지적하였듯이 옥스퍼드대 유럽정치학자인 얀 지엘론카 교수의 『유럽연합의 종말』과 궤적을 달리하는 부분을 지니고 있다. 유럽연합이 실질적인 힘을 잃고 신중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 그와 달리, 이 책의 저자는 비관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유럽연합을 바라보는 따뜻한 지식인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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