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오만은 멸망의 선봉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자신이 있는 정부는 국민 전체를 보고 국정을 운영한다. 자신 없는 정부는 일부 지지층만 생각하고 그들과만 일하려 한다. 이때 지지층 외의 국민은 정권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오늘(6월 24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당인 국힘당과 정부 간 협의의 내용이 야간 집회 금지를 담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은 민주노총의 노숙 집회와 집단 시위보다도 더 분노하는 한둘이 아니다. 수출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원전 재가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각 나라의 흐름과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의 당기 순이익은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니 어이할까. 부익부 빈익빈 경제구조가 심화되는 현상을.

민주노총의 집단행동은 이런 정의롭지 못한 경제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건설노조를 조폭으로 몰아가고, 민주노총을 북한과 연계되었다며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북한은 범죄혐의의 애꿎은 상징어 아닌가.

오늘 당정협의에서 했다는 한동훈 법무장관의 말을 접하고 이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인지 의아했다. 그가 했다는 말의 요지는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권이니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

당정협의에서는 여러 사람의 많은 말이 오갔겠지만 한동훈이 했다는 말이 글의 주제인 만큼 언론에 보도된 그의 말, 그것도 요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께서 불법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방치하는 정부, 불법집회를 단호히 막고 책임을 묻는 정부 중 후자를 택했다"

"이게 우리 정부가 출범하게 된 약속이었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대처는 국민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한다... 법무부와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수사라는 기조를 유지하며 불법집회 악습 근절에 최선을 다하겠다."

미안하지만 직설적 표현을 좀 써야겠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한두 가지 반박만으로도 족하리라. 국민이 선택한 정부? 선택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때 받은 득표와 상대 후보와의 표 차이를 복기해 본다면 이런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24만 7천여 표 차였다. 윤석열이 48.56%, 이재명이 47.83%를 얻어서 겨우 0.73% 차로 윤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워낙 근소한 표 차였기 때문에 항간에선 재검표 주장도 있었지만, 이재명은 즉각 패배를 인정하고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5월 24일(水)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럴 때 대통령과 여당에게 요구되는 것이 겸손이다. 국민 통합이고 야당과의 협치이다. 그리고 국민 전체에게 갖는 감사의 마음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른다.

유신 때 체육관 선거 결과를 놓고 보인 안하무인(眼下無人) 독재 정권을 방불케 다. 겸손과 협치ㆍ통합의 정치를 하면 정권이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헛발질들을 해댔다. 역사의 후퇴가 분명했다.

윤 정권을 지지한 48.56%의 구미에 맞는 정치만을 고집한다. 지지하지 않은 51.44%는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국민의 과반수가 넘는데도 국정 운영에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지지하지 않은 국민을 더 의식한다.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고 져 주는 것처럼 양보하며 끝내 이해시켜 정치의 동력으로 삼는다. 여기에 정치 경륜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튜어 대통령이야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치자. 이럴 때 측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도 잘 해야 되지 않나. 측근은 이럴 때 잘 하라고 있는 것이지 않나. 모두가 ‘예’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두 '꿀 먹은 x어리'(언어 장애인)다. 당정의 지도부는 대통령 말에 추임새 넣는 수준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라고 할까.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법무부장관 한동훈이다.

한은 법무부와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집회 악습 근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검사들을 동원하여 검찰공화국의 진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결기가 엿보인다.

'법과 원칙'이란 말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많이 써먹은 단어이다. 여기에 '공정과 상식'이란 말을 덧붙여서 말이다. 하지만 윤 정권 1년을 되돌아볼 때 이것은 ‘내로남불’로 귀결되었다.

민주노총 정권 퇴진 요구 집회.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노동자,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 퇴진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2023.5.17 hama@yna.co.kr

정권을 합리화하고 야당을 공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한은 또 '불법 집회의 악습 근절' 운운했는데, 불법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들에게 불리하면 불법 집회이고, 유리하면 합법 집회인가.

대통령부터 장관들 그리고 당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끄덕하면 전 정부 탓이다. 이것은 '우리는 못난 정부요'하는 말밖에 안 된다. 설령 이전 정권에 잘못했다고 치자. 보완해서 온전한 것으로 만들면 된다.

그래서 그 정책을 국민 전체를 위해 유효적절하게 쓰면 된다. 정의와 진리에 근거해 분명히 범한 오류는 공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치가 대립되어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을 갖고 탓하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 그것도 절대 다수인 민중을 적으로 돌려 성공한 정권은 없다. 이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빈민은 정부가 손잡고 함께 나아갈 대상이지 뿌리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민노총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정책을 제시할 때이다. 이런 주제로 당정협의회도 필요한 게 아닌가. 서민 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

강한 쇠는 부러지기 쉽다고 했다. 극우 강경파로 보호막을 치면 대통령의 선택지가 많지 못하다. 그들만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소수의 지지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로 시야를 넓히는 정권이 되기를 바란다.

검찰권 갖고 국민을 겁박하지 말라. 양날의 칼로 불리는 검찰권이 부메랑이 되어 정권에 돌아가지 말라는 법 없다. 한동훈을 비롯해 이른바 정권의 핵심들은 자중할 필요가 있다. 오만은 멸망의 선봉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