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사학자와 함께 한 저녁식사

오늘 몇 사람이 이만열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시국을 걱정하는 마음을 나누었다. 생각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중국음식점 '만다린(滿多隣)'이 우리가 만찬을 나눈 자리였다. 노 사학자의 혜안이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이 교수님은 순교자 손양원 목사 연구에도 일가견을 가진 분이다. 몇 년 전에 나의 박사학위 논문인 '손양원의 역사적 사실 재조명'을 드렸다.

이 교수님은 논문을 정독하셨다며 공들여 쓴 노고가 역력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덕담인 줄 알면서도 기분 좋은 건 덜된 인간임을 자인하는 것이지 싶다.

더 감사한 것은 나의 논문을 다시 풀어 쓰고, 거기에 이 교수님이 모은 자료를 덧붙여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책을 한 권 출판하자고 했다. 이른바 공저 성격의 책이다.

선생은 많되 스승이 드문 시대에 이만열 교수님을 스승으로 둔 우리는 복되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 한 황보윤식 선생은 이 교수님을 '부자(夫子)'로 부른다.

중국의 선현들 중 '-자(子)'가 붙는 사람은 여럿이다. 하지만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 '부자(夫子)'는 공자에게만 해당된다. 공부자(孔夫子)란 곧 공자를 가리킨다.

황보 선생은 우리나라에선 이만열 교수님에게만 이 호칭을 쓰고 있다고 했다. 존경의 마음이 영글어 나온 결과일 것이다. 참 스승은 말뿐 아니라 실천이 따를 때 가능한 호칭이다.

이상욱 목사는 청소년 독서지도를 하면서 이 교수님의 책을 텍스트로 사용했다고 한다. 평소 뵙고 싶었던 분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 여쭙고 받은 답변에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교수님은 예의 그 책 선물 시간을 가졌다. 자서전인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새물결플러스)에 직접 서증(書贈)하신 책을 받고 저자의 올곧은 삶을 전해 받는 것 같아 자세를 가다듬었다.

내게는 손양원 연구자라며 특별히 <산돌 손양원 목사 자료선집>(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을 준비해 오셨다. 교수님이 심혈을 기울여 모은 손양원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책이다.

내가 박사논문을 쓸 때 도움이 컸던 자료집이다. 교수님이 주신 서증은 받는 이를 잠시 당혹스럽게 했다. "李明在 목사님, 존경과 감사를 담아. 이만열 드림. 2023. 03. 23" 내가 교수님께 드리고 싶은 내용이다.

2시간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교수님은 걸어서 댁까지 10분 거리라고 했고, 우리는 이상욱 목사의 차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이 교수님은 차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이명재 記).

이명재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