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벚꽃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잠깐 아름답긴 하지만 지고 나면 마음이 좀 허해지는 게 벚꽃입니다.

서울에서 연린 3.1절 104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한 시민이 '사쿠라(벚꽃)는 왜국 국화입니다'란 문구를 등에 붙이고 행사장 왼쪽에 서 있더군요.

그 와중에 폰의 사진 한 장이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벚꽃이 아닙니다. 태극기꽃입니다' 자세히 보니 만개된 태극기 그림을 가득 붙여 놓았더군요. 관계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편,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장면도 여럿 목도됩니다. 우리나라 행정수도인 세종특별시의 한 아파트에 일장기를 자랑스럽게 게양해서 이웃들의 항의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는 보도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는 조센징은 무조건 싫다, 일장기를 거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냐며 도리어 큰소리를 쳤다는군요. 찾아간 기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협력 파트너'론을 지지해서 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답니다.

정말 그 대통령에 그 백성입니다. 윤 대통령의 역사관은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다고들 말합니다. 일본의 상황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거든요.

윤의 역사관은 일제의 식민사관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사관은 한 마디로 지난 세기 일제의 이웃나라 침략은 정당했다는 거예요. 무지몽매에 빠져 있던 나라를 근대화시키고 백성을 눈 뜨게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이른바 근대화론입니다.

이 이론이 역사학계에서 도태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뇌아들은 아직도 이 주장을 펼치고 있어서 웃음 짓게 합니다. 부끄러운 역사 이론이어서 이전에는 말도 꺼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 때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윤석열이 집권하니 아주 노골적으로 변하더군요. 윤 대통령은 어제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미래를 향한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경축사를 듣고 어이없어했습니다. 순간 일본 총리의 기념사로 착각할 뻔했다는 비아냥이 따랐습니다. 윤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우리가 약하고 준비 안 되어 당한 것이란 식으로 말했습니다.

즉 국제적 정세 변화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구한말 한일병탄 때 을사5적의 우두머리 이완용이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일본이 다시 쳐들어온다면 나라를 갖다 바칠 태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으로 침략전쟁을 정당화할 장치를 마련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협력 파트너 운운하는 것은 굴종 이외의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의 위험성은 여러 곳에서 노정됩니다. 야비한 인성의 대표적 양태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일(美日)엔 비굴할 정도로 아부하면서 약골 북한엔 굴복시키겠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있지 않습니까.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국경일 경축사를 통해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국민을 위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그것은 기대가 아니라 실망만 안겨주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3.1절 기념사가 이 정도이니 오는 8.15 광복절 기념사엔 또 어떤 내용으로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지 조마조마해집니다. 친일의 피가 흐르는 극우들의 기세가 드세지기 시작했습니다. 친일 대통령이 뒷배가 되어 서울 거리를 장악하고 주사파 척결, 빨갱이 퇴치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친일의 대체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단의 무리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위안부 평화집회에 대형 스피커를 틀어놓고 훼방을 하며 '친일이 어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도덕적 타락 나아가 민족 정체성에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윤석열에 비하면 박근혜 정권은 순진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식민사관에 쩔어 있는 세력들의 사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했었지요. 하지만 국민 절대다수의 저항과 역사학계의 반대에 부딪혀 그 시도는 좌절되었습니다.

그런데 윤 정권은 국민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곧 법입니다. 17세기 프랑스 루이14세가 했다는 '짐이 곧 국가다'란 말이 오버랩되니 어찌 된 일이지요? 수족인 검사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해서 통치권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검찰독재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한 산물인 피고 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제국주의 일본의 탐욕과 연결지어 배척하는 것은 대인의 마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벚꽃(사쿠라)은 일본의 국화(國花)입니다. 사쿠라는 우리에게 좋은 이미지 아닙니다.

3.1절에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이 왜국에 경도되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풍찬노숙하며 조국을 찾겠다고 헌신한 순국선열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럴 때 벚꽃 대신 태극기꽃을 나무에 가득 달아 활짝 피게 한 사람들의 우국충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태극기꽃, 그 이름이 친근해서 좋습니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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