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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김남주의 '설날 아침에'
편집부 | 승인 2023.01.21 22:23

       설날 아침에
                 詩 / 김남주

눈이 내린다 씨락눈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
뿌리뽑혀 이제는
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그릇에도 내리고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
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
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울고 날이 새고
설날 아침이다
새해 새 아침 아침이라 그런지
까지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
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뭐하러 왔냐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 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돈이며 명예 같은 것은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죄다 주고
나이 마흔에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우리 아우 덕종이한테는
행여 주눅이 들지 않도록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두고 가렴

* 설 명절 아침이다. 과거 한 때는 양력 설, 음력 설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설 명절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말하는 것이다. 

문화의 변이로 설 명절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 자라나는 세대는 설 명절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잘 모를 것이다. 

설날을 서민의 앵글로 조망하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김남주의 눈은 그만큼 따사롭다. 그의 삶이 한 편의 서사시 아닌가. 

1990년쯤으로 기억된다. 그해 겨울도 최루탄을 맞아가면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김남주 형과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광화문 구세군회관 봉주르 커피숍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차려 입은 옷과 외모와는 달리 그의 눈에서는 형형(炯炯)한 빛이 발해지고 있었다. 그 4년 뒤 형의 부음을 접했다. 

설날과 눈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함박눈이 아니라 싸락눈이다. 조각난 삶의 파편을 암시한다. 

싸락눈이 미치는 영역이 한 시골 집이다. 하지만 시인에게 그 집은 대 우주와도 같다. 댓잎, 장독대, 옹기그릇, 외양간... 우리의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는 고향집이다. 

설날 아침에 닭이 울고 까치도 날아와 울어준다. 희소식의 징조다. 시인에게 희소식은 돈 명예 같은 것이 아니라 노총각 아우 장가 가는 일이다. 

그 희소식이 사랑 노래 되어 울려퍼지기를 바란다. 대단한 희원(希願)이다. 2023년 설날 아침, 김남주 형이 그립다(耳穆).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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