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새해를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100년 전 이해는 어떤 족적을 우리 역사에 남겼을까를 생각한다. 일제 강점하에서 선각자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항일투쟁에 살신했고. 조선의 문화와 국수(國粹) 보전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그런 중에서도 백주년에 되돌아보는 1923년은 다음 세 사건을 필자에게 떠올려 준다. 이들 사건들을 곱씹으면서 그 100주년의 의미를 역사화하고 덧붙여 새 꿈을 염원코자 한다.

첫째는 1923년 1월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의 「조선혁명선언」이 작성, 발표되었다. ‘강도 일본’이라는 두 글자로 시작되는 「조선혁명선언」은 김원봉(金元鳳)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의열단의 지향과 행동강령을 잘 설명하고 있는 문건이다.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할 당시, 단재는 사상적으로는 아나키즘에 경도되어 있었고, 자신이 참여하여 성립시킨 대한민국임시정부와는 적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단재는 이승만(李承晩)이 ‘위임통치안’을 제기했다 하여 그를 대통령으로 삼은 임시정부를 공격하는 ‘반임정’의 위치에 있었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이 때 의열단의 의백 김원봉은 의열 투쟁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신채호에게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토록 당부하고 유자명(柳子明)을 함께 붙여 주었다. 필자는 「조선혁명선언」같이 웅혼한 글을 본 적이 없다. 이와 관련, 1월 31일 시민단체들이 공동주최하여 「조선혁명선언」선포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둘째는 1923년 4월 25일 진주(晉州)에서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과 사회적 처우 개선을 위해 형평사를 설립한 것이다. 백정은 조선 시대 도살업(屠殺業)을 전문으로 하는 신분으로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법제상으로는 신분 해방이 이뤄졌으나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 무렵 ‘만민공동회’에서 활동한 백정 박성춘(朴成春) 등의 노력으로 서울 시내에서 갓을 쓰도록 허락되었으나 차별대우는 여전했다. 일본에서 수평사 운동이 일어남을 계기로 진주에서는 백정 출신(장지필 이학찬)들과 양반 출신(강상호 신현수)들이 백정 신분 해방운동이라 할 형평사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이 지역의 양반들이 형평운동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은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운동은 그 뒤 확대되어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게 되었고 신분 해방운동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셋째는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關東)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을 계기로 대대적인 조선인 학살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일본의 군인 경찰 자경단에 의해 무고하게 참살당한 조선인은 6천6백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 살인 수법 또한 너무 잔인했다.

일본의 변호사연합회와 민간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아직도 이에 관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 또한 일본 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회도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

진상 규명은 화해와 용서를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한일 양국이 <간토(關東) 조선인 대학살> 문제를 해결하여 진실과 정의에 입각한 새로운 한일관계가 형성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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