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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틀고 간사이(關西) 여행(5) - 도시샤대학 내 정지용·윤동주 시비
이명재 | 승인 2023.01.04 00:10

날씨가 맑았다. 전 날 대중교통으로 강행군을 했는데도 몸과 마음이 가뿐했다. 바쁘기 그지없는 연말 막바지에 짬을 내어 가이드를 해 준 신 선교사가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하루에 이렇게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총(耳塚)-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기요미즈 데라(淸水寺)-石碑(元和 キリシタン 殉敎の 地)-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닌넨자카 거리.

이곳을 둘러보면서 들려주는 신 선교사의 해설은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가 확보하고 있는 일본학 지식은 20여년 일본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쌓은 것 훨씬 이상이었다. 성의를 다 해 안내해 준 그가 고마웠다.

이중 도시샤대학은 내가 평소 가 보고 싶은 1순위의 곳이었다. 기독교 인구가 전체의 0.7%(개신교+가톨릭)밖에 안 되는 일본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독교 대학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해 사회에 진출한 저명한 인사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 대학은 민족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이 수학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참회록과 서시, 자화상 등의 시로 친근한 윤동주는 무언의 저항시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의 아름다운 시 저변에 깔려 있는 저항 정신은 그래서 더 강력하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 든다.

몸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한 윤동주. 그의 멘토였던 송몽규는 동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몸으로 일제에 항거할 테니, 너는 시로 저항해라." 윤동주는 시로 저항하는 방법을 알았다. 과격한 선동 시가 아니라 얌전한 시에 더 큰 저항의 무게가 실렸다.

우리나라 현대 시학의 문을 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지용은 시어의 조련사라고 할 만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월북 시인으로 분류 되어 그의 시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이름도 정OO으로 묵자 처리될 만큼 오랜 기간 경계의 시인이었다.

정지용의 시와 이름이 해금된 것은 유신 정권이 종언을 고하고 그 아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나서의 일로 기억된다. 지금은 그의 출생지 충북 옥천에서 그를 기리는 지용문학제가 열릴 정도로 열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도시샤대학 정문을 지나서 신학관을 끼고 약간 돌아가니 2기의 석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편에 정지용 시비가 서 있고 좌편에 윤동주 시비가 서로 짝이 되어 손님을 맞았다. 정지용의 시비에는 '압천(鴨川)'이 윤동주의 시비엔 '서시(序詩)'가 우리 글로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세웠을 시비 옆 태극기를 보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두 시인의 나라 사랑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또 시비 옆에 각각 방명록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각 플라스틱 상자 안에 필기도구와 함께 들어 있는 두툼한 방명록엔 이곳을 찾은 한국인들의 필적이 갖가지 내용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방명록에 적었다.

"책과 영상을 통해 간접 교감하다가 드디어 발길이 닿았습니다. 두 분 시인의 살아 생전 모습을 뵈는 듯합니다. 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외롭지 않으시겠어요. 무엇보다 두 분이 친구되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 옵니다. 2022년 12월 29일 이명재 記"

정지용 윤동주 시비를 둘러본 다음 도시샤대학 예배당과 신학관 등지를 살펴보았다.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 건물이 대학의 역사와 학풍을 말해주고 있었다. 1875년에 개교했으니까 1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학교이다. 기독교 학교라는 데 더욱 정이 갔다.

작별 인사를 고하고 대학 문을 나섰다. 일본의 겨울 날씨는 우리의 늦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양복 차림인데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긴 도보로 도리어 땀이 비적비적 올라왔다. 우린 닌넨자카 거리를 밟으면서 옛 향취에 젖기 위해 급히 자동차에 올랐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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