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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틀고 간사이(關西) 여행(4) - 가가와(賀川豊彦) 기념관
이명재 | 승인 2022.12.30 13:33

이번 간사이 여행 중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곳이 가가와기념관이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목사이자 사회사업가였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를 기억하기 위한 자료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고베시에 위치해 있는 가가와기념관, 어린이집과 생협 등과 함께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가가와는 고베생활협동조합의 창시자로써 고베생협은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사회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고베생협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 셋은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엄마 아빠가 독립해서 하루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그들로서는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기념관 방문객을 위해 마련해 놓은 가가와 도요히코 관련 자료들. 실비를 받고 제공하고 있다.

그야말로 재미있는 모험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고베에 있는 가가와기념관을 찾아가야 한다. 이럴 땐 구글 맵이 큰 의지처가 된다. 호텔을 나와서 구로몬시조(黑門市場)를 거쳐 전철역 쪽으로 갔다.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시장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 개의 전철역 출입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두 문이 같은 선(線)의 역으로 들어가는 문인지 아닌지?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려운데,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는지...

가가와기념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고쿄 관장(왼쪽 첫번째)와 학문적 자문역을 맡고 있는 다나까 참사(왼쪽부터 두 번째)

한참을 고민하다가 물어보기로 했다. 앞 못 보는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여성이 있었다. 폰에 저장되어 있는 가가와기념관 주소를 보여주며 어디서 전철을 타야 하는지 물었다. 전혀 예기치 않았는데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떠듬떠듬 하지만 우리 말을 하는 일본인을 만나니 반갑기가 이를 데 없었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한국인 남친이 있었는데, 지금은 혜어졌다는 말까지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가가와 도요히코가 빈민목회를 하면서 즐겨 입고 다니던 골덴 단복. 이런 옷을 수선을 해서 헤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우리를 안내해 준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헤어지려는 순간, 그 여성의 아버지가 표 끊는 데까지 안내해 드리라고 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표 끊는 데까지 동행했다.

함께 내려오지 않았다면 또 시간을 많이 허비했을 것이다. 여성의 아버지가 고베까지 가는 표를 끊어주겠다며 지폐를 꺼냈다. 얼른 손사래를 치며 내가 계산을 했다. 그들의 친절과 호의가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가가와가 창립한 고베생협은 생협운동의 성공적인 사례에 꼽힌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고베생협을 배우고 있다.

전철이 바로 왔다. 고속 급행 전철이었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걸어서 다른 선의 전철을 타야 했다. 고베 한신역에 도착했다.

걸어서 15분 가량 걸리는 거리인데 택시를 탔다. 가가와기념관(賀川記念館)이라고 하니 잘 몰랐다. Kagawa Memorial Center라고 영어로 도착지를 말했지만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명칭과 주소가 나와 있는 폰 영상을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관 입구에 세워져 있는 가가와 흉상. 일종의 포토존으로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육중한 건물 앞에 택시가 섰다. 가가와 선생과 관계 있는 단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賀川記念館(하천기념관)이란 글자에 오른 쪽으로 가라는 화살표와 함께 붙어 있었다. 건물 3층이었다. 주사(主事) 후지 와타루(藤井 航)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명함을 전달하니 관장에게 연락을 취해 주었다. 잠시 후 교코 가미우치(上內鏡子) 관장이 달려왔다. 일본기독교단 神戶예수團敎會 목사라고 했다. 기념관을 이 교회가 맡아서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 같았다.

같은 층 일부 공간을 우애유아원으로 쓰고 있다. 가가와는 어린이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교코 관장은 먼저 양해를 구했다. 선약이 있기 때문에 20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며 미안해했다. 관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가가와도요히코를 일본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가와 선생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의 업적에 비해 국민들이 아는 정도는 낮다고 했다. 하지만 인식의 폭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고베 지역 소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중요도가 점증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가가와가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말에 교과서적 답변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시실 내에는 가가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자료가 많이갖추어져 있었다. 가가와가 직접 쓴 책만도 1백여 권이나 되었다.

교코 관장은 다나까 시게노리(田中 重至) 참사(參事)를 소개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념관에서 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 보았다. 기념관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가가와 선생에 대한 지식과 학문적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기념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40명쯤 되는 것 같다고 했고, 가가와란 인물과 업적에 대해 석박사 논문이 나온 것이 있는지 물으니 아직 없고, 지금 가가와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 학도가 한 사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가와는 노벨평화상 후보 5회, 문학상 후보 2회라는 후보 추천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의 타계로 노벳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가가와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석박사 논문아 없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3층 전체를 기념관으로 쓰고 있었다. 가가와에 대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가와가 직접 쓴 서적류뿐 아니라 간접 자료가 되는 것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그가 쓴 책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1백여 권쯤 되지 않나 싶다.

가가와는 관심과 활동 분야가 몹시 넓었다. 신학만이 아니었다. 사회복지, 생협, 의료, 농민, 노동조합, 봉사활동,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무척 넓었다. 이 모든 분야의 공통분모는 약자 사랑과 그것의 실천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참사 다나까(田中 重至) 선생은 가가와 도요히코의 사상과 연구 동향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교코 관장은 한국에서 오신 귀한 손님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어 죄송하다며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가가와기념관이 펴내고 홍이표 박사가 번역한 책이었다. 만화로 엮은 가가와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고쿄 관장은 표지 안쪽에 이런 서증을 남겼다.

"저희 기념관을 방문해 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가가와 도요히코 선생의 신앙과 사상이 한국에서 널리 확산되는 데 가교 역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2년 12월 28일, 夏川記念館 館長 上內鏡子 贈"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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