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동해보복법의 교훈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함무라비 법전 등 고대에 통용되었던 법 중 동해보복법(Lex Talionis)이라는 게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법이지만 이 법을 제정한 목적은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 법이 만들어진 취지는 이렇다. 사람들이 해를 입으면 그것 이상으로 보복을 했다.

즉 이 하나 부러지게 하면 이빨 2개를, 눈 하나에 상처를 입으면 눈 2개에 상처를 입혀 앙갚음을 했다. 지나치게 갚지 말고 정도껏 갚으라고 만든 것이 동해보복법이다.

이 법이 고대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가 현재는 삼갈 교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하는 동네가 특히 이 교훈을 새기길 바란다. 어찌 된 영문인지 동해보복법과 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잘못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면 될 일을 상대 진영의 비슷한 흠결 찾기에 바쁘다.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김건희 여사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팔짱을 끼고 기념사진 찍은 것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외교적 결례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 부인이 세계 제1의 강대국 대통령에게 매달리듯 팔짱을 끼고 찍은 기념사진을 언론에 뿌렸다. 친분을 과시하고 싶은 의도가 깔려있겠지만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지않는다.

함께 찍는 기념사진이라는 게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유명인일수록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다가가 순간 포착의 기념사진들을 생산하는 일을 많이 본다.

함무라비 법전

또 팔짱 낀 사진 같은 것은 대상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진위 여부는 모르겠으나 김 여사는 '쥴리' 의혹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당사자이다. 그렇다면 '팔짱' 행위는 의도적으로라도 피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성이 마비된 듯한 국힘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을 때 마크롱 대통령과 팔짱을 끼었다며, 그건 괜찮고 이것만 문제 삼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무식을 자랑한다.

함량 미달 정권의 단선적 비교이다. 2018년 프랑스 방문 때 김정숙 여사가 마크롱 대통령과 찍은 '팔짱' 사진은 기념사진이 아니라 자리를 이동하면서 카메라에 잡힌 스냅 사진이다.

즉 마크롱 대통령이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권하는 장면이다. 그렇다 보니까 김정숙 여사가 마크롱에게 팔짱을 낀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바이든-김건희 사진과는 애초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움직일 때 기자들이 따라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어느 것 하나 기사 밖에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이번 동남아 순방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특정 방송사 기자는 대통령 전용기에 타지 말라고 한 것 말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외국 정상의 회담 취재도 불허하고 대통령실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로 받아쓰게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군사독재 때도 이러진 않았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고 결정인가는 모르겠지만 이런 안하무인(眼下無人) 처사에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격은 대통령의 말로 인해 추락할 수도 있지만 측근의 동해보복식 일 처리로도 얼마든지 저락할 수 있다.

정권의 실세인 양 처신하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정치꾼들은 현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면 전 정권은? 하면서 사사건건 동해보복식 사고에 매몰되어 험담을 마다하지 않는다. 무식할 뿐 아니라 묘혈을 스스로 파는 행위이다.

김건희 여사가 만찬장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팔짱을 끼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들도 나라는 영원하되 정권은 유한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자신의 종말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듯 지금의 정권 담당자들도 이 정권이 무한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진 않을까.

충성은 마음에 중심이 서 있을 때 가능한 가치이다. 그 중심은 국민을 향하는 것임은 재언을 요치 않는다. 함량 미달의 정권이 가벼운 무게를 감추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장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각성이 있을진저!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