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노벨평화상을 그려본다.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노벨상의 계절이 다가왔다. 노벨상 여섯 종류 중 이미 다섯 종류의 상은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순차적으로 발표되었고 경제학상 발표만 남았다. 경제학상은 10월 10일 발표될 예정이다.

중요하지 않은 상이 없겠지만 이중 특별히 내가 관심 갖고 보는 상은 문학상과 평화상이다.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82)에게로 돌아갔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알만한 사람들이 받았다. 하지만 금세기 들어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들이 받는 회수가 점차 늘고 있다. 작가와 독자가 저변으로 확대되는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노벨 평화상 메달

한때 노벨상이 강대국 중심의 나눠먹기식 잔치란 비판을 받을 정도로 편향되어 있었다. 노벨 문학상뿐 아니라 평화상도 이런 선상에 있었다. 평화는 힘과 비례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노벨 평화상 수여의 기준이 뭔가로 뒷말이 많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상도 수여 대상자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림원에선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작동해 후보를 찾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노벨상 발표의 때가 되면 우리나라도 저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국력이 성장한 21세기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점쳐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을 고대했다.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사진=연합뉴스)

그중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문은 문학상과 평화상이었다. 문학상 후보로 올라간 사람들은 몇 되는 걸로 안다. 시나 소설 등 작품성은 뛰어난데 번역의 한계 때문에 수상이 어렵다는 얘기도 들렸다.

실제로 고은 시인은 201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유력하다고 해서 발표 날 그의 집 대문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대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비켜 갔다. 성추문 사건에 휘말려 수상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학상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은 평화상이다. 2000년 노르웨이의 노벨상위원회는 그해 평화상 수상자로 김대중 대통령을 단독 결정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그리고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평화상이었다(사진=연합뉴스)

이로써 드디어 우리도 노벨상 수상 국가가 되었다. 앞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 지역의 확대에 대해 언급했지만 2022년 수상자들이 좋은 예가 될 듯하다. 이번에는 개인 1인과 단체 두 곳이 공동 수상했다.

수상자와 단체의 이름이 다소 생소하다. 수상한 개인은 벨라루스의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60)이다. 그리고 두 단체는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얼과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시민자유센터(CCL)이다.

국제 질서가 미-중-러 등 강대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권위주의와 맞서 싸우는 개인과 두 시민단체에 수여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평화를 위협하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약자의 몸짓이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노벨 평화상이 발표되었을 때 수상자의 나라가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벨라루스 알레스 비알리아츠키'를 통틀어 사람 이름으로 생각했다. 무지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나라 이름의 생소함도 한몫했다.

쇠창살 너머로 손 흔드는 2022 노벨 평화상 수상자 비알리아츠키(사진=연합뉴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벨라루스가 나라 이름이었다. 소련에 속한 나라였다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의 해체로 1992년 독립한 국가였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알려진 알렉산드로 루카센코가 22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도 경험한 바 있지만 장기독재는 많은 폐해를 낳는다. 벨라루스 대통령 루카센코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나라를 공격의 전초 기지로 러시아에 내주어 세계의 공분을 산 사람이다.

인권운동가 비알리아츠키는 독재자 루카센코에 저항해 민권신장을 이루려 투쟁해 왔다. 반정부 인사로 찍혀다. 세금 포탈이라는 죄명으로 지금도 옥중에 있다. 그는 옥중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 소식을 듣게 되었다.

2022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러시아의 인권단체 '메모리얼'(좌)와 우크라이나의 '시민자유센터'

시민단체 두 곳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 평화운동은 불의와 맞서 싸우는 일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그들 단체의 활동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인정받게 된 셈이다.

우리의 인권신장운동, 시민운동의 역사도 짧지 않다. 공의를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함으로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나아가 세계로부터 공감을 받는 단체로 거듭나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날도 오지 않겠는가.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