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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성복 지음 <극지의 시>이지숙 (도예가)
편집부 | 승인 2022.09.17 16:46
이성복 지음 <극지의 시>(문학과지성사, 2015년 9월 출판)

‘시’라는 단어를 ‘작업’으로 바꾸면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생각이 되었다

나는 이성복 시인 하면 지금의 계절과 달리 ‘그 여름의 끝’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 시를 통해 오늘 소개할 시론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만난 ‘극지의 시’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잠깐 내가 애정했던 시를 소개하고 싶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때가 되면 마음은 늘 남쪽으로 향한다. 여름에는 담양의 명옥헌에 앉아 붉게 타오르는 나무 백일홍을 바라보며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읊는다. 8년을 족히 넘게 이어 온 나의 여름을 나는 법이다. 늘 전시와 작업이 빼곡하니, 다섯 시간을 넘게 차로 달려야 갈 수 있는 그곳은 내게 너무 멀고도 멀다. ‘그 여름의 끝’은 내게 의식의 정점에 있는 글이며, 동시에 여러 의미를 지닌다. 여러 차례 폭풍에도 그 시간을 버텨내는 나무의 성정을 닮고 싶다. 지치지 말고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나만의 간절한 염원과 다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많은 사물을 만들고 그려내는 나의 작업이 닿아야 할 지점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아마 이 시처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궁극의 지점일 것이다. 이 시를 반복할 때마다 이성복 시인의 생각이 궁금해지던 차에, 세 권의 시론을 만나게 되었다. 작년 공책모임에서 한 분의 추천에 의해서이다.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 중 ‘극지의 시’는 작업하는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다. ‘시’라는 단어를 ‘작업’으로 바꾸면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생각이 되었다. 이성복 시인의 ‘은유의 감정으로 풀어내는 시론’은 흙작업을 하는 작가로의 생각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내가 붓으로 표현해내는 것들을, 그는 무던한 말과 글로 날카롭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이라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 마주 서는 거예요.
그 앞에서 온갖 지식과 경험이 쓸 데 없는 일이 돼요.
글쓰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가 내쉬는 긴 호흡이 어떤 도저한 각오이면서 비장한 결단일 거예요.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나가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길이예요.
이 길은 오직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내야 하므로 우리 몸 속에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길은 김수현과 나쓰메 소세키처럼 '온몸으로' '소처럼' 밀고 나가는 길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요행도, 행운도 없는 그 길에서 살아 돌아와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건 여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처럼 삶은 의무이며 희망이에요

- 극지의 시, 이성복 시론 중

온통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살아온 나에게 시인의 ‘극지의 시’에 표현된 시 정신은 참 좋고 위안이 된다. 행위에 대한 근거와 정당성을 부여하며 어디에도 없는 길을 내딛는 나의 발자국에 힘을 실어준다. 책장 가득 꽂힌 책 중 어느 책으로 글을 쓰면 좋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책가도 작업을 하고 있으니 책을 꼽는 것이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 글은 매번의 일이 아니니 꽤 오랜 시간 책장 앞을 서성이게 되었다. 적당한 무게와 청량감을 지니게 쓰고 싶었지만 글을 쓸수록 비장해지니 어쩌나하는 마음이 든다. 온몸으로 해나가는 나의 작업패턴을 누구에게나 쉽게 권하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길의 처음에 있을 때는 내뱉을 수도, 자격도 없었는데 이제 지나온 시간의 힘으로 나는 ‘극지의 시’를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더없이 군더더기 없는 좋은 글이라고 칭찬한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남벽 아래서 긴 호흡 한 번 내쉬고 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어떤 행운도 어떤 요행도 없고, 위로 또 아래로도 나 있지 않은 길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 안나푸르나 등반에서 조난당한 젊은 대원의 일기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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