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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한국학 발전에 헌신한 한상하(韓相夏) 사장을 추모함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 승인 2022.09.13 13:51
고(故) 한상하 경인문화사 회장[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상하(1933-2022) 사장이 가신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그가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길을 떠나자 생전의 인연을 생각하고 몇 마디 고별의 말이라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차일피일 늦어졌다.

8월 13일에 출발한 그의 불귀(不歸)의 저승길, 뒤늦게야 전하는 옛 친구의 송사를 잠시 듣고 가시게요. 노구를 끌고 가는 길이 어찌 새 희망을 찾아 달리는 젊은이들마냥 달릴 수야 있겠소. 곧 뒤따라 갈 친구의 작별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 주시게요.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아마도 1970년대 전후이지요. 그때 나는 본격적으로 학문의 길에 들어섰을 때였고, 한 사장님은 영인을 위주로 한 출판사업을 시작했을 때였지요. 국사학을 비롯하여 국학(國學)을 연구한다는 우리에게는 선인들이 남긴 자료들이 필요했지요.

그때만 해도 복사나 영인이 쉽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자료를 구하기도 힘들었고 그 자료의 소재 처를 알았더라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써서 카드로 만들고 그것을 연구에 활용했더랬지요. 그런데 이 무렵 한 사장님은 학자들에게 국학의 자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한 사장님과 함께 지금 그 이름을 당장 기억해 내기가 힘든 정 모라는 분도 국학에 필요한 자료를 발굴, 영인해 주시는 데에 힘썼지요. 한 사장님이 좀 마른 편이었다면 그분은 약간 넉넉한 품을 가지셨던 분이었지요.

두 분은 4.19 이후 민족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점증하던 국학연구에 자료를 채워주려고 노력하셨지요. 학인들의 필요에 따라 혹은 학인들이 미처 의식하기 전에 자료를 영인하여 학계에 제공하곤 했지요. 그것이 당시 한국학을 공부하던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한참 뒤에 한 사장님은 당신의 출판사인 경인문화사의 사무실을 내가 봉직하는 숙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옮기고 가끔 만나 차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고향이 황해도 재령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경인문화사에서 출판한 한국문집총간(1-100권)

재령에는 그곳 선비들이 율곡(栗谷)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경현서원(景賢書院)이 있다는 것, 한 사장의 집안에서 5대째나 그 서원을 관리해 왔다는 것, 경현서원의 경(景)자와 한 사장의 조부 한인국의 인(仁)자를 따서 출판사의 이름을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라고 정했다는 것, 그리고 그 당시에 영인 출판하기 시작한 <한국역대문집총서>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그 무렵 우리 학계가 경인문화사에 크게 은혜를 입은 것이 있지요. 당시 국학연구의 붐과 함께 다산(茶山)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되었는데, 그때 서울 시내 몇몇 교수들(이우성 강만길 이지형 성대경 김경태 김태영 김진균 안병직 정창렬 정윤형 이만열 이동환 박찬일 임형택 송재소 김시업)이 다산연구회를 조직하고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번역, 뒷날 창비에서 출판하게 되었지요.

이때 사용된『목민심서(牧民心書)』의 텍스트는 정인보(鄭寅普)와 안재홍(安在鴻)이 교열하여‘신조선사’에서 간행(1934-1938)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산연구회 회원들은 경인문화사가 1970년에 복간하여 학계에 제공한『여유당전서』에 실려있는 『목민심서』를 텍스트로 사용했어요. 이 때 경인문화사에서 『여유당전서』를 복간하지 않았더라면 『목민심서』의 번역은 더 지체되었겠지요.

한상하 사장의 영인 출판의 배포는 한국의 문집 출판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문집 총서 3000권, 지리총서 400권을 영인 출판하여 한국학 연구의 원대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지요. 이런 총서류의 출판은 개인 구매가 극히 힘들고 도서관이나 연구소가 아니면 구입하기 힘들었어요. 때문에 초기에 복간된 문집류의 약 20%가 미국과 일본으로 보급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지요.

한 사장님은 이런 큰 사업을 벌이는 동안 화재와 부도에 직면하여 크게 어렵게 된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부도옹처럼 이런 난관을 극복하면서 한국학 출판의 큰 뜻을 접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국학계는 돌아가신 당신께 큰 은혜를 입었고, 고인께 진 빚은 한국학 발전이라는 열매로 환원되었습니다.

경인문화사에서 영인 보급한 한국고적도보 1

* * * *

8월 14일, 필자는 은평 가톨릭 병원에 마련된 한 사장의 빈소를 찾아 헌화 분향하고 상주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그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경인문화사의 한상하 사장이 돌아가서 오늘 문상했다. 그의 아들 한정희 사장과 식구들을 만나 위로하고 한상하 사장이 과거 어려운 때에 한국의 고전과 희귀본 영인사업을 통해 국사학을 비롯한 국학의 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모른다고 극구 칭찬했다. 사실이다. 이제 국학발전에 기여한 한상하 사장의 그런 역할을 증언해 줄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고인의 영전에서

필자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비록 그의 자녀손들에게 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선대에 대한 긍지를 크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가신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지만, 그가 한국학 발전에 끼친 큰 공헌을 잊어서는 안 되겠기에 짧은 글로 회상하면서 그의 귀천(歸天) 길을 애도한다.

이만열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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