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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뜨거웠던 여름, 신선마을에서의 하루
이명재 | 승인 2022.08.15 22:51

"어디에요?"

여름 휴가랄 것까진 없지만 쉼의 시간이 약속되어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이상욱 목사 일행에게 어디쯤 왔느냐고 넣은 전화다. 우리는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신선마을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더위를 식히자고 얼마 전에 약조를 했었다.

"일이 있어서 좀 늦게 출발하는데요, 먼저 가 있으세요." 그리고 열쇠 번호를 알려주었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출발하려 한 것은 어둑할 때 운전의 어려움에 더해 가는 길 주위의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쳤을 뿐 아니라 몇 번 다녀간 길이기도 해서 마음 놓고 갔다. 하지만 중간에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다시 돌아 나와야만 했다. 외길이어서 차를 되돌리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기억을 총동원해서 겨우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시각은 오후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천팀이 도착하려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아내는 불을 켠 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사이 나는 변화된 모습의 농장을 살폈다. 텃밭에 심은 야채가 탐스러웠다. 고추며 가지며 오이, 수박 등...

문만 열면 손이 닿을 듯한 곳에 매달려 있는 열매들이 탐스러웠다. 마당 한쪽에 심어진 사과나무에는 푸르디푸른 청사과가 자기를 봐 달라는 듯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조금 이르지만 먹기에 부족함이 없을 사과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귀하고 탐스러울수록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 이번이 아니면 나의 차지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시각의 아름다움이 미각의 그것에 비할 바 아닐 터. 이번엔 저 사과들을 완상만 하고 가겠다.

밤 8시 30분, 두 대의 자동차가 문을 들어섰다. 이상욱 목사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 또는 문자를 주고받지만, 무주군 설천면 심산유곡 신선마을에서 대면하니 기쁨이 더 했다. 인천에서 온 팀은 호스트 격인 이상욱 목사 부부와 심근보 목사 부부였다.

안면이 없지 않은 심 목사님과는 반갑게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많이 늦었다. 다행이라고 할까. 인천 사모님들이 식사 거리를 다 준비해서 왔기 때문에 만드는 시간이 필요 없었다. 차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게장, 노각무침, 깻잎절임, 가지무침, 해물 된장찌게... 진수성찬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풍성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게장을 장만해서 멀리까지 가지고 온 데 대해 감동이 일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럴 때의 포만감은 행복감과 직결된다.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에 모두 취해 있었다.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 나오는 소년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갔다고나 할까. 모두들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며 고향을 떠올리고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공기 맑고 물 좋은 청정지역은 사람의 정신까지 깨끗하게 해 준다. 긴 시간을 정담으로 보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은 걸 보면.... 하룻밤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시각은 날을 바꾸어 1시 50분이 지나고 있었다. 남성 셋은 아랫집, 사모님들은 윗집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윗집은 내가 전에 무오당(无惡堂)이라고 명명한 그 집이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짧은 시간의 수면이었지만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기 암 환자들이 신선마을에 와서 3~5년 살다가 완치되어 원 거주지로 돌아갔다는 말이 실감 났다. 아침식사를 걸러도 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그럼에도 사모님들은 친환경 식단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어릴 적 소꿉놀이가 떠올랐다. 나는 아빠, 영자는 엄마 그리고 아들딸들.... 놀이가 사실로 환치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해하던 어린 시절이 비문(飛紋)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이상욱 목사님은 대추나무밭과 야채밭에 농약을 뿌리러 갔다. '농약' 하면 DDT나 에이전트 오렌지 따위의 화학 농약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곳은 화학 농약 사용이 금지된 청정지역이다. 이 목사님은 각고의 노력 끝에 친환경 농약을 스스로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병충해는 예방하지만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심근보 목사는 전기 공사에 열중이다. 200V 전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심 목사님은 전기 공사의 경력이 축적되어있는 전문가 수준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 전기 공사에는 필요한 연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문학도인 이상욱 목사가 그런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드릴 대신에 도라이버, 쇠톱 대신에 커트 칼로 공사를 하려고 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기색 없이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오후엔 대추나무밭 용수용 모터 전선 공사까지 완료해서 농군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을 톡톡히 해냈다.

오전 10시 30분쯤 인평교회 채수호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12시쯤 신선마을에 도착한다는 알림이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 생활을 마감하는 아들을 만나러 대전 가는 길에 들린다는 것이다. 그는 신선마을 첫 방문이었다. 가는 사람은 기대에 들떠 있었을 것이고, 맞이하는 사람은 또 다른 측면에서 접대에 신경을 써야 했다.

특식으로 선정된 것이 즉석 돼지 불고기이다. 야외용 화덕을 꺼내 오고, 철사판을 준비하고 장작과 가스 가열기까지 등장했다. 준비한 고기는 삽겹살과 목살이었다. 장작에 불을  지핀 후 숯이 되었을 때 고기를 구워내는 식이었다.

고기 굽는 담당자로 내가 결정되었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열심히 구워 날랐다. 사모님들이 준비한 빈대떡도 일품이었다. 많게만 보이던 먹거리들이 젓가락 횟수에 반비례해 점점 줄어들었다. 질 좋은 고기, 굽는 정성, 고품격의 상추깻잎 및 막장이 삼위일체가 되어 맛을 더욱 돋구었다.

야외에서의 즉석 불고기는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네 발 달린 화덕에 장작 숯불.... 분위기만으로 참가자들의 감성을 흐트러놓기에 충분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구운 돼지고기 권하는 인정이 쏠쏠했다. 후식은 채 목사님이 사 온 복숭아였다.

후약이 있는 관계로 한 팀 두 팀 떠날 준비를 했다. 채수호 목사님이 먼저 출발하고 이어 심근보 목사님이 인천을 향해 떠났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사랑과 이해가 녹아 있었기 때문에 헤어짐의 아쉬움이 컸다.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맡은 바 소임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폭우가 퍼부울 것이란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산길을 달려야 하는 우리도 갈 길을 재촉해야 했다. 산길에서 큰비를 만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운전의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어둠이 깔리기 전 출발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될 것이다. 다행히 비를 만나지는 않았다. 1박2일의 휴가답지 않은 여름 휴가, 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이명재 記).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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