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민주주의, 인내를 요구하는 기제(機制)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지혜로운 사람은 앞날을 예측하고 말과 행동을 한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성급하게 판단한다. 이런 유의 사람들은 좋은 결과보다 대체로 일을 그르치기 쉽다.

요즘 윤석열 정권이 하는 일이 딱 그렇다.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두어 경찰을 견제하고 또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의 중립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를 수용할 경찰은 없을 것이다.

시계를 조금 되돌려보자. 이른바 검수완박법(이것도 잘못된 용어임)으로 나라가 어수선할 때 검사장 회의 및 평검사 회의를 개최했다.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집단적 저항이었다. 그때 징계받은 검사가 있었는가.

검찰총장 윤석열을 중심으로 전체 검사들이 똘똘 뭉쳐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의 집단행동을 보면서 든 생각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다. 검사들을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경찰의 현장 지휘자 격(경찰서장)인 총경들이 모여 행안부 내에 설치하려는 경찰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정권 때, 검찰개혁을 반대한다며 집단적으로 행동한 검찰 집단과 데자뷰되었다.

경찰청은 그 모임을 주도한 류삼영 총경(울산중부경찰서장)을 대기 발령하고 적극 참석자 50여 명에 대해 감찰에 들어갔다. 과거 같으면 이쯤해서 당사자들의 기세가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후폭풍이 대단하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경찰청지부와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이 "류삼영 총경 대기발령을 철회하고 감찰조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경찰 초급 간부급인 경감과 경위들이 오는 30일 전국 현장팀장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경찰 내부 반발은 윤희근 경찰총장 사퇴 촉구까지 이어졌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윤 후보자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찰은 ‘검사는 되고 경찰은 안 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며 묻고 있다.

윤 정권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전 정권에서 한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현 정권에 부메랑이 되고있는 셈이다. 역사의 퇴행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유신 때의 방법을 쓰고 있다.

지난 23일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다고 회의 종료 2시간만에 대기방령된 류삼영 울산중부경찰서장(사진=연합뉴스)

16만 경찰이 거대 집단인 건 맞다. 그들이 권력의 충견(忠犬)이 되어 선량한 국민을 괴롭혔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민주 경찰,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나. 이런 흐름을 틀겠다고 하니...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오게 되면 그들의 힘이 가중될 수도 있다. 견제와 감시가 필요한데,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방법이 여럿 있다. 중수처 설치 등이 논의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군대 다음으로 계급이 강조되는 곳이 경찰이다. 하지만 계급이 굴종을 낳아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발전에 걸맞게 경찰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적지 않은 수의 총경들이 모여 의견을 모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 파악도 무시한 채 류 총경을 주도자 대표로 찍어 회의 종결 2시간 만에 대기 발령 인사조치했다. 이것을 보면서 과연 이들이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속전속결이 아니라 인내의 방법을 요구하는 기제이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