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지식인과 지성인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세상 많이 변했다. ‘발전했다’가 아니라 ‘변했다’라고 한 데에는 부정전인 뉘앙스가 깔려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대학도 변화에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대학이라고 하는 곳은 일반인들의 또 다른 기대치가 상존한다.

지금에야 그 상(像)이 많이 흐려졌지만 지난 한 땐 지성인을 양성해서 사회에 배출하는 기관으로 여겼다. 상아탑이라고 해서 특별한 공간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기적 성향들이 대학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개인의 책임이 없지 않겠지만 그것에 앞서 사회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대학생들의 이기성을 그냥 보아넘길 일은 아니다.

서울 연세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연세대 청소ㆍ경비 노동자들이 학내에서 집회를 한 모양이다. 이것을 몇몇 대학생들이 형사 및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 대학생들이 소송을 건 이유가 청소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을 침해당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시위 소리가 시끄러워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대단한 기백(?)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게 있다. 이 학생들의 공부는 사회의 공동선이나 진리 탐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취직 공부일 가능성이 많다. 전자(공동선ㆍ진리 탐구)는 이런 사회적 갈등 요인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들의 학습 속에 포함시킨다.

한 연세대 학생이 서울 신촌캠퍼스 대학원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부를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취직을 위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수학 공식 하나 더 푸는 것이 노동자들의 생존권보다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지금 내가 중요하다.

이런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대학생이라면 시끄럽다고 학내 노동자들을 고소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우월의식의 과표출(過表出)에 다름아니다.

지난 세기 군부 독재가 국민을 결박하던 시절, 서울대 한완상 교수는 <지식인과 허위의식>이란 책을 출판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 책에서 배운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지성인과 지식인이 그것이다.

사회학적으로 꼭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성인은 깨어 있는 지식인, 지식인은 배웠으되 자신만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한 그 학생들은 이 범주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연세대 학생들의 학내 청소 및 경비 노동자들의 집회가 학습권 침해라며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것에 대한 입장을 대자보로 붙여놓았다(사진=연합뉴스)

이기주의를 포장해서 말하면 개인주의가 된다(철학적 개념을 사상하고 말하는 것임).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물결을 역류하는 우둔함으로 치부되어도 할 수 없다. 공동선을 위해서 다른 계층을 인내하며 지켜보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운 사람의 역할은 분명하다. 어두운 사회의 빛이 되고, 혼미한 시대의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을 보는 따뜻한 눈이지 시끄럽다고 걸어대는 소송이 아닐 것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