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과 차 한 잔] 패장(敗將)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장세호 위원장

지난 대선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장세호 위원장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6.1지방선거에 칠곡군수 후보로 출마해 그곳이 더불어민주당의 무덤임을 입증했다. 가능하지 않은 지역 상황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해 둘까.

며칠 전(6월 26일) 칠곡에 갈 일이 있었다. 볼일을 다 본 뒤 장 위원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점심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추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흔쾌히 차를 몰고 약속한 음식점으로 달려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든 기색이 발견되지 않았다. 속으로 삭히는 것도 힘들 텐데....

중앙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국적인 지명도는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장 위원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뚝심 있는 지도자라는 것을 잘 안다. 특히 사람 섬기는 일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몸에 배어 있다.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

야성이 강한 그가 제6대 만선 칠곡군수를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섬김으로 맺어진 대인 친화성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앞에서 칠곡을 '더불어민주당의 무덤'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장 위원장은 그때 무소속 옷을 입고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칠곡군수 하려면 무소속으로 출정하라고....

그는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치하는 동네만큼 '짠 밥'(밥그릇) 수를 따지는 데가 없는데, 국힘당의 후보가 된 윤석열은 청치 초년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의외로 쉬운 싸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홍준표나 유승민 같은 관록이 있는 사람들과 붙었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텐데 윤석열이 싸움의 상대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여긴 것도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하지만 20대 대선에서 국민은 윤석열을 선택하고 말았다.

장 위원장의 말처럼 불가사의한 일 같지만 따지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한다. 개혁과 국가발전의 청사진을 다 짜놓고 정권을 잃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을 넘어 국가적으로 볼 때도 큰 손실이다.

역사는 전진하는 것인데 벌써 곳곳에서 원 위치로의 회귀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장 위워장은 이것을 가장 마음 아파했다. 역사는 지그재그의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지배 권력의 일방적인 '지그'만 있었지 ‘재그’는 많지 않았다.

다시 지방선거 얘기로 대화의 소재를 살짝 틀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집권당의 도당위원장이면 총선이나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는 것이 격에 맞는다. 도지사 출마 권유가 많았다. 하지만 자신보다는 젊고 유능한 여성 정치인 임미애가 적임자라며 그를 적극 밀었다. 민주당엔 박토인 경북에서 임미애 후보는 기대 이상의 득표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힘당 후보가 칠곡군수 무투표 당선될 상황이 벌어졌다. 척박한 땅이라곤 하지만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앙당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의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렇다고 격에 어긋나는 일을 그에게 대놓고 강요할 순 없는 일이다. 야구로 치면 희생 플라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약한 타자를 내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장 위원장은 후보 신청 마감 직전에 부랴부랴 서류를 갖추어 칠곡군수 후보로 등록을 했다. 결과는 패(敗)였다. 하지만 그는 이번 선거에서 작은 희망을 읽었다고 했다. 이전 선거운동 때는 '민주당' 쪽 후보는 빨갱이로 매도를 당했다. 이렇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떤 때는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그런 게 없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이면 당을 앞장서서 지켜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개혁의 주체로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 촛불혁명이 가져다 준 권력 앞에 교만했다는 것, 젊고 참신한 신인 발굴에 게으른 것이 기득권 지키기로 보였다는 것, 취약 지역 지원에 소홀했다는 것 등을 꼽았다. 중앙당에 대한 서운함이 서려 있는 지적이다.

향후 행보를 물었다. 우선 쉬고 싶다고 했다. TK에서 야당을 한다는 것은 일제하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들 하는데, 독립운동에 쉼이 있어서 안 되듯 이곳에서의 야당 지도자가 쉰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장 위원장은 쓴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에겐 곤혹스런 주문일 것이다.

당장 도당 위원장 선거가 목전에 있다. 그가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어쨌든 패전 뒤의 일을 수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2년 후 총선도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그의 역할이 멈추어서는 안 될 이유는 이것 말고도 여럿 있다. 찻집을 나서며 헤어지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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